윤창중 / 논설실장

진영(61) : 서울 용산구 한나라당 재선 국회의원, 박근혜 당대표 시절 비서실장. 그가 지난해 6월 돌연 친박계를 공개 탈퇴한 다음날, 너무 의외라고 생각해 한 찻집에서 만났다. “아니, 왜 친박계를 나왔나요? 딴 사람들은 친박계가 다음 정권 잡을 미래권력이라고 서로 들어가려 하는데.” “더는 못 참겠어서요.” “뭘요?” “박 (전)대표를 둘러싼 측근들의 충성경쟁, 너무 모욕적이에요.” “그럼, 박근혜에게 말하지 그랬어요?” 휑한 눈으로 대답했다. “박 (전)대표가 그렇다고 고칠 사람도 아니잖아요?” 얼마전 한 지인이 꼭 참석해 달라고 해 거절할 수 없는 저녁 모임에 갔더니, TV 보면 ‘박근혜 경호원’처럼 옆에 따라붙는 G의원이 약속 시간보다 40분 늦게 나타났다. 잘못봤을지 모르지만 정권을 이미 다 잡은 완장 부대의 거만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에 묻어나는 ‘치욕’. 진영이 친박계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심정, 이해됐다.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 - 당대표·최고위원·원내대표가 제 각각 어디로 튈지 모르는 ‘봉숭아학당’이 된 근본 책임의 90% 이상이 박근혜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엄격한 진단을 내려야만 집권당의 표류 뒤에 숨어 있는 원인과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첫번째 근본 원인! 박근혜가 한나라당이 아무리 죽 쑤더라도 이명박 정권엔 절대 발 담그기 싫다는 오기, 이대로 시간 보내면 정권은 다 따놓은 당상인데 하는 부자 몸조심의 착각 속에서 7·4 전당대회 때 전면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 그러다보니 지도부 모두 깡통 안에 갇힌 메뚜기들처럼 보수·우파의 정체성이고 뭐고 따지지 않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좌파 경쟁! 친박계 아닌 사람은 아닌 대로, 친박계는 친박계대로. 박근혜가 2위로 내세운 최고위원 유승민, 갈수록 점령군처럼 호가호위! 원희룡·남경필과 손잡고 무상급식? 반값등록금? 모두 해야 한다고. 원내대표 황우여가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당 차원의 지지를 말하자 또 반대! 당대표 홍준표는 홍준표대로 튀며 참여연대까지 찾아가 연대를 구애해? 그야말로 오합지졸! 무슨 이런 집권당이 다 있나! 박근혜, 4·27 재·보선 참패 직후?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더니 당을 이 지경 만들어 놓는 게 원칙론자의 책임있는 행동?

박근혜와 친박계가 ‘성공한 미래 권력’이 되려면? 첫째, 국민에게 그래도 저 사람들이 정권 잡으면 뭔가 희망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게 해야 한다. 친박계? 뭔가 다를 거라는 ‘무엇’이 전혀 없다. 천안함·연평도 땐 친박계 모두 똘똘 뭉쳐 침묵. 청와대 민정수석을 법무장관에 기용하는 전대 미문의 사건 앞에서도 일체 침묵, 이런 무책임이 어디 있나! 가급적 발 담그기 싫으니 MB 정권 마음대로 잘 해보라는 것밖에! 지난해 6·2 지방선거 참패 → 올해 4·27 재·보선 참패가 이어지는데도 전혀 바뀌지 않고 좌쪽으로 널 뛰는 한나라당. 국민이 막연히 박근혜가 대선후보가 될 것 같으니 내년 4월 총선에서 찍어준다? 박근혜 대세론의 최대 취약점은 ‘비전 결핍’!

둘째, ‘미래권력자’를 둘러싼 계파 핵심들이 적어도 정권을 잡을 때까진 완장 차고 권력을 누리려 해선 안된다. YS 상도동계의 좌장 김동영-그는 1991년 3당 합당 당시 이미 전립선 암에 걸려 기저귀를 차고다녔다. 정무1장관으로 임명돼 청와대에서 대통령 노태우를 만났을 때 이렇게 말한다. “YS가 대통령만 될 수 있다면 각하의 꼬붕이 되겠습니다.” 노태우, “이런 참모를 갖고 있는 YS가 인간적으로 부럽다.” 김동영은 서울대병원에 찾아온 YS에게 “총재님이 대통령되시는 것 보지 못하고 먼저 갑니다.” 며칠 후 세상을 뜬다. 친박계는 이미 정권 다 잡았다는 환상에서 자리 뺏길까 박근혜 앞뒤로 병풍 치고 외부에서 들어가려는 사람들 막고. 4년 전 경선 때나 지금이나 박근혜 나오는 사진엔 똑같은 얼굴들. 박근혜의 용병술 문제다!

국민에게 정권이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주기 위해 몸을 던지는 투자를 하지 않고 측근들도 낮은 포복의 겸손함을 잃으면 청와대 앞에서 유턴하는 ‘실패한 미래권력’으로 기록되고 만다. 권력은 공짜가 아니다(Power is not f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