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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 농업경제학

한 달 전만 해도 한 포기에 1200원 하던 배추 상품의 전국 평균 가격이 2200원에 육박한다. 오랜 장마로 인해 배추를 비롯한 채소와 과일 생산이 여의치 않아 가뜩이나 연초부터 치솟는 물가에 가계가 쪼들리는 서민들의 시름이 깊다. 콩나물 가격 한두 푼 인상에도 부담을 느끼는 주부들은 이래저래 신경이 많이 쓰인다. 한편 생산자인 농민 역시 추석을 두 달 앞두고 불안하기만 하다. 미리 물건을 넘겨버리고 한시름 놓아야 하는 것인지, 끝까지 버티면 한몫 잡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것이나 아닌지, 과연 때맞춰 물건을 내놓을 수 있도록 날씨가 도와 줄 것인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농산물 유통에 관계하는 부서 역시 안절부절못한다. 농식품부는 벌써부터 돼지고기 가격안정과 채소 계약재배 확대에 나서고 있으며, 농촌경제연구원은 정확한 가격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도 안심이 안된다. 재작년에는 밀가루 값이 90% 급등한 것이 문제가 됐고, 지난해에는 채소와 과일 값이 30~40% 올랐으며 고랭지 배추가격 파동을 겪기도 했다. 올해는 또 어떤 품목이 농민을 실망시키고 서민을 울릴지 모두 전전긍긍이다.

1998년에서 2007년까지 10년 동안의 월별 농가판매가격지수를 분석해 보면 가격 변동이 가장 심한 농산물은 과일과 채소였다. 쌀의 연중 가격변동 정도를 1이라고 할 때, 과일은 그 6배, 과채류는 8배, 엽채류는 12배, 근채류는 무려 16배나 변동했다. 특히 엽채류와 근채류의 가격은 추석 전에 집중적으로 오르는데, 10년 평균을 내 보면, 8월과 9월의 엽채류 가격은 각각 전월에 비해 40%씩, 근채류 가격은 25%씩 올랐다. 10년간 축산물 가격이 거의 2배가 되는 동안 채소 가격은 고작 1.5배 오르고 과일 가격은 오히려 내렸지만 채소와 과일 가격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변동 폭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농가 판매가격이 이러할진대 여기에 유통 마진을 더한 소비자가격의 사정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정부는 해마다 추석을 앞두고 연례행사처럼 물가안정대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틀에 박힌 정책이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애꿎은 유통상인 탓을 해 보기도 하지만 유통상인도 위험을 부담하고 이것저것 빼고 나면 그렇게 남는 장사도 아니라고 한다. 소득 2만달러 시대에 웬만한 중산충은 20만원 남짓한 추석 차례상 물가보다는 휴가에 더 관심이 많고 그저 애가 타는 쪽은 농민과 서민이다. 물가를 억지로 안정시키면 생산자인 농민의 불만이 쌓이고, 그대로 놓아두면 서민이 어려워진다. 농민과 서민 가운데 어느 한쪽을 택해야 하는 가격조절 정책에서 벗어나 보조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농산물 가격을 잡고 그만큼 농업인에 대한 보조를 늘리거나, 과감하게 농산물 가격을 시장에 맡기고 그만큼 저소득층 보조를 늘려야 한다.

더 근본적인 방법은 물가 불안의 주범인 채소와 과일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간의 농업정책은 식량 작물인 쌀에만 치우쳤다. 쌀 생산에는 치솟는 인건비를 이기고 가뭄과 장마를 견딜 수 있도록 많은 투자를 했지만 채소와 과일 산업에는 소홀했다. 쌀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수요가 줄어 과잉생산을 걱정하게 됐지만, 채소와 과일은 소득 증가와 함께 수요가 증가하는 작물이고 수출 가능성도 크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산이 많은 한국의 풍토를 고려할 때 해볼 만한 작물이다.

올해 추석은 9월12일이다. 2003년 추석(9월11일) 이래 가장 이른 추석이 될 것이다. 추석물가 때문이 아니라 농업을 위해서라도 채소와 과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제 해마다 농민과 서민 사이의 여론 줄타기를 그만두고 확실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