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논설실장

바람에 폴폴 흩어지는 깃털의 가벼움! 홍준표(57),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돼 수락연설 차례가 돌아오자 냅다 바닥에 엎드려 큰절 하고 연단에 돌아와 한다는 말, “연설문 준비를 못했다.” 뭐, 연설문도 준비 안해? 잠시 우물쭈물,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이더니 느닷없이 소리친다. “현대조선소 경비원의 아들, 고리 사채로 머리채 잡혀 길거리를 끌려다니던 어머니의 아들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답답해하던 청중이 일순 환호하자 또 느닷없이 “참보수하겠다”고 고함치다가 연설을 끝냈다. 후보 연설에서는 “국가를 세탁기에 넣고 다시 돌리겠다”고 했다. 격(格)의 상실! 한밤 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보수우파도 포퓰리즘 해야 한다”고 또 엉뚱한 소리. 다음날 당사 첫 출근 회의, “계파 해체하겠다. 중지 안하면 공천 안주겠다.” 밤마다 친박계 만나 읍소해 당대표 된 걸 다 아는데.

회의 끝내고 느닷없이 “난 YS 키드(아이)다”고 하더니 전직 대통령 김영삼의 상도동 자택에 들어가자마자 슬리퍼 신고 앉아 있는 YS를 향해 마룻바닥에 또 냅다 엎드려 큰절. YS, 뭐 이런 황당한 시추에이션? 하는 표정 지으며 그러지 말고 악수하자는 듯 손 내밀고. 홍준표가 YS 키드라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YS 가신 홍인길이 홍준표가 15년 전 정치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같은 홍씨라 유달리 챙긴다 해서 ‘홍인길 키드’란 소리는 들어봤지만. 넉살도 좋다. 이런 인물이 집권당 대표? 한나라당의 인재 고갈에 마음이 무겁다. 또 민주당 대표 손학규를 찾아가, “형님, 내가 당대표가 됐다니 이상하지 않아요?” 한나라당이 민주당 ‘작은집’? 공사(公私) 구분 못하고 돌출 행동하는 게 무슨 대단한 낭만이라도 되는 걸로 착각하는 유치찬란함이여! 우쭐함이여! 어제 KBS TV 일요진단에 나온 홍준표, “대기업 하면 떠오르는 말이 뭐냐”는 질문에 “착취”란다. 민주노동당 대표다. 홍준표의 정체(正體)가 도대체 뭐기에 저럴까? 그가 보내줬던 그의 자서전 2권을 재독했다. 책의 90% 이상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현대조선소 임시직 야간 경비원이었고, 어머니는 광주리 사과장수였고, 누이들은 공장 직원이었고, 자신은 1만4000원 들고 무작정 상경해 고대 법대 시험보느라 38번 버스 타고 헤맸던 가족사, 개인사로 채우다가 이런 얘기를 한다. “나의 정치입문은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보다 내 가족 보호라는 지극히 단순한 차원에서 출발했다.” 한나라당의 정신적 풍토를 압축! “원래 나는 성장 과정과 검찰에서의 활동 과정만 두고보면 진보좌파로 흘러갈 소지가 다분히 있었던 사람이다. …보수우파 진영에서 (정치를)하다보니 나도 보수우파가 돼버렸다.” 정치입문 때 김대중·노무현도 영입 제의를 했지만 대통령 김영삼 쪽에 먼저 입당 약속해 하는 수 없이 보수우파로 갔다는 것. 근본적으로 깃털 같은 가벼움은 철학의 빈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게 이어지고 있다.

진실로 홍준표에게 충고한다. 사시 합격해 ‘모래시계’ 검사 브랜드 하나로 금배지 4선에 당대표까지 됐지만 모든 게 관운(官運)이라는 사실을! 운 따르는 사람한텐 당하기 어렵다는 게 정치다. 하지만 정치가 얼마나 무서운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홍준표는 8월 임시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북한인권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큰소리쳤다. 집권당 사상 전례 없이 중진감(重鎭感)이 박약한 리더십 갖고 큰소리 한마디 친다고 ‘벼룩’같이 살길만 찾아 튀는 한나라당을 결집시킬 수 있다? 어림없다. 원내대표 때 속도전한다며 140 몇개의 법안을 밀어붙이더니 서너개밖에 처리하지 못했던 홍준표가 뭐? 또 느닷없이 ‘박근혜 대세론’을 편들어 당을 벌집처럼 들쑤시고.

홍준표! 불언실행(不言實行)하라! 말 앞세우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라! 그래도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그 집권당 대표 아닌가? 제발 깃털처럼 가볍게 언행하지 말고 격부터 좀 갖춰라! 계속 좌충우돌 하다간 당대표에서 임기 전에 중도하차할 수도 있다. 종국에 정권까지 날아가면 보수우파의 죄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