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자본주의’! 최고의 부자가 화두를 던지다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 / 마이클 킨슬리 엮음, 김지연 옮김 / 이콘

흥미진진한 책이다. 빌 게이츠가 2008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제창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에 대해 40여 명의 경제학자와 사상가, 현장 활동가들이 제각각 내놓은 견해를 모았다. 빌 게이츠는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자본주의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혁신하자”는 파격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이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명명했다.

빌 게이츠가 던진 화두는 일파만파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창조적 자본주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기본적인 의문에서부터 그 같은 개념 규정이 왜 필요한가, 나아가 옳고 그름에 대한 견해차 등 가히 백가쟁명의 토론이 벌어졌다. 그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책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빌 게이츠의 다보스포럼 연설로 시작하는 책은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대담으로 이어진다. 버핏은 온건하지만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이어 경제학자와 사상가들의 주장과 반박, 대화와 논쟁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먼저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에드 글레이저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견해를 편다. 하지만 법경제학의 개척자이자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포스너 판사는 “창조적 자본주의는 문제를 악화시킨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199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역시 창조적 자본주의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가난한 나라의 발전 속도도 떨어뜨릴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낸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했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방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기업이 사회의 책임을 가지는 도덕적 실체라는 주장은 법과 규정을 확립하는 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흐리게 만든다”며 “그러는 사이 진정한 민주적 과정은 기업과 로비스트들에게 남겨진다”고 일침을 가한다. 좌파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존 로머 예일대 교수도 “자본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창조적 자본주의에 의존하기보다는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자”며 정부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반면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인 마이클 크레머는 “자본주의의 창조성을 활용한다면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빈곤층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수 있다”며 창조적 자본주의를 옹호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낸시 코언도 창조성이 자본주의가 역동성을 유지하는 기본 요소라며 지지를 보낸다. 데이비드 보겔 버클리대 교수 역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장기적으로 더 경쟁력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 입장이 맞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창조적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어떤 답을 선택하든지간에 관건은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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