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일기 /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 일기, 윌리엄 T 와이블러드 엮음, 문관현 등 옮김/플래닛미디어

6·25전쟁의 실체에 대해 우리 한국인들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대부분은 꽤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1950년 발발 이후 61년간 귀에 솔도록 들어온 이야기가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면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또 남북이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탓에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정치·군사적 세력으로 힘을 발하고 있는 상황을 60여년 전의 전쟁에 비추어 통절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이 책은 1949년부터 일본에서 미국 극동공군 사령관으로 근무하던 조지 E 스트레이트마이어(1890∼1969) 중장의 6·25 참전 일기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25일부터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켜 전장에서 빠진 1951년 5월20일까지 자신이 겪은 일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미군 장성이 6·25를 기록한 일기는 현재 3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번에 우리말로 옮겨진 셈이다.

스트레이트마이어의 일기는 미군 지휘부 간에 주고받은 수많은 비밀 전문을 기록하고 있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비화들을 접할 수 있다. 이 비화들은, 아직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휴전 상태로 살고 있는 당대의 한국인들에게 울림이 큰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북의 침공 정보 없었던 미군, 1950년 9월에 핵사용 검토”=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은 북한이 남한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을 당일 오전 11시에야 들었다. 본국의 워싱턴 출장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다. “야전 정보 시스템 어딘가에 문제가 생겨 극동군사령부는 약 20만 병력이 집결하는 것도, 그들이 38선을 넘는 것도 미리 알고 있지 못했다.”

책에 따르면 미 육군성 작전연구실은 1950년 9월부터 지상군을 근접 지원하기 위해 원자폭탄을 사용하는 문제를 분석했다. 스트레이트마이어 장군의 12월1일 일기는 공군 참모총장에게 보낸 비밀 전문을 담고 있는데, 작전연구실의 엘리슨 존스가 박사가 원폭 사용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전장을 방문 중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해리 트루먼 당시 미 대통령은 중공군이 6·25전쟁에 개입했을 때 기자회견을 통해 “원폭 사용을 늘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단순히 위협용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일기는 증명하고 있다.

일기는 미군 전투기의 오인 사격으로 연합군의 일원이던 영국 군인 20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한 사건도 소개했다. 1950년 9월24일 일기는 스트레이트마이어가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에게 오인 사격 사실을 보고했다는 내용을, 며칠 뒤인 9월28일 일기는 이와 관련해 영국 공군대장에게 유감을 표명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일기 곳곳에서 맥아더 사령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맥아더가 적기에 요격될 위험을 무릅쓴 채 비무장 항공기편으로 대구, 김포, 수원 등을 다닐 정도로 용감했으며, 허황된 이상에 빠져 있는 공산주의자들의 모험을 분쇄하겠다는 반공주의 신념이 굳건했다는 것이다. 그는 1951년 4월11일 일기에서 “대통령이 왜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적었다.

◆“아군끼리 싸우며 협업해야 했던 전쟁이었다”= 스트레이트마이어의 맥아더에 대한 찬사는 현명한 상관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미 공군이 육군 및 해군과 동등한 위치에서 독립된 군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맥아더가 후원해줬기 때문임을 일기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1950년 1월28일의 일기는 전선 시찰 때 육군 장군만 지프에 타고 극동공군 사령관인 스트레이트마이어는 도보로 이동하는 것을 본 맥아더가 탄식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육군과 공군 장성이 똑같이 지프에 타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맥아더의 탄식에 그때까지 육·해군의 부속 군대 취급을 받았던 공군의 지휘관인 스트레이트마이어는 감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미 육군이 극동공군사령부를 예하에 두고 전술지원 항공기를 보유하려고 한다든지, 해군이 항공부대에 대한 자신의 통제 권한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항공전을 시도한 일에 대해 강력히 맞섰다. 그는 6·25전쟁 중 공군의 업적이 언론에 제대로 드러나야 한다고 믿었기에 뛰어난 인재들을 공보장교로 활용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기자들을 상대하며 홍보에 힘을 썼다. 그의 일기는 이러한 ‘내부 전쟁’을 치르면서 외부의 적을 무찌르기 위해 육·해·공군이 협력하며 합동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부의 불협화음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는 우리 군이 전시를 상정해서 참고해야 할 대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군 지휘부의 일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는 스트레이트마이어의 일기는 한국군과의 협력을 비중 있게 담고 있지 않다. 미군이 한국군과 별 상의 없이 전쟁을 수행했다는 것은 미국이 ‘참전국’이 아니라 ‘당사자’로서 싸웠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스트레이트마이어는 1950년 10월17일 일기에서 신의주 파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같은 해 11월7, 8일 일기에서 시가지를 완전히 박살낸 전황을 자세하게 기록한다. 이 부분을 읽는 한국인 중에 착잡한 심경을 갖지 않는 이가 있다면,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론자이거나 한반도의 미래에는 절대로 전쟁이 없다고 확신하는 낙관론자임에 틀림없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