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 산책 1·2 / 헤이르트 마크 지음, 강주헌 옮김 / 옥당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단일 공동체 개념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불과 100년 전인 20세기의 유럽은 정치적 충돌, 경제적 격차, 문화적 갈등 등 바람 잘 날 없는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다. 이 짧은 시간에 유럽은 어떤 공통점으로 반목에서 협력의 관계로 발전했을까.

다른 역사와 민족에서 출발해 배타적 정치체제를 갖춘 유럽 각국들의 ‘유대감’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유럽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따로 또같이’ 형성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의 근간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책은 ‘유럽인에게 공통된 역사가 있을까’란 의문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독립된 세계들이 실은 유럽이란 커다란 울타리 안에서 같은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새로운 유럽을 연결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사람들’을 통해 밝혀낸다.

저자는 베르사유를 이해하지 못하면 베를린을 이해할 수 없고, 뮌헨을 이해하지 못하면 런던을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유럽은 그렇게 안개처럼 모호한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끈끈하게 이어진 밧줄이다.

저자는 유럽연합의 단일화폐인 유로화가 화려하게 출범한 1999년 1월4일 암스테르담을 출발하면서 지난 100년간 세계사의 중심이었던 유럽 대륙의 겉과 속을 훑는 여행을 시작했다. 1년간 20여 개국, 60여 개 도시를 돌며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냉전 시대 등 크고 작은 20세기 역사가 남긴 흔적을 수집했다.

베를린에서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벙커를 보고,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독재자 엘레나 차우셰스쿠의 화려한 옷을 보며, 원전사고로 폐허가 된 체르노빌에서는 버려진 보육원에 남겨진 장난감 자동차를 봤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저자는 트럭 운전사, 교수, 기자, 극작가, 1·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등 평범하지만 20세기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경험한 유럽의 역사 이야기를 경청했다. 책은 조각난 퍼즐을 맞추듯 개개인의 현장 이야기와 직접 본 장면들을 통해 거대한 유럽사를 완성해간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1894년의 ‘드레퓌스 사건’, 영국에서 맞닥뜨린 1901년의 ‘빅토리아 여왕의 장례식’ 등 역사적 사건의 반추(反芻)를 통해 오늘의 유럽을 새로 조명한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역사 여행을 따라가다보면 사소한 사건이 유럽사의 흐름을 결정짓기도 하고 연관 없는 사건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추상적 역사 이론에서 이 책은 때론 흥미로운 소설처럼, 때론 가슴 벅찬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구체적 언어로 묘사된다. 무엇보다 20세기 산증인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는 이 책은 어느 역사학자가 정리해준 유럽의 이론서보다 진실하고 낭만적이다.

김고금평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