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망명 벤 알리 튀니지 前대통령, ‘궐석재판’ 35년형 선고

북아프리카 튀니지를 23년간 철권통치하며 권력을 남용하고 공금을 횡령한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74·사진) 전 대통령에게 징역 35년이 선고됐다.

튀니지 형사법원은 20일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벤 알리에게 징역 35년과 벌금 5000만디나르(약 386억원)를 선고했다. 또 그의 부인 레일라 트라벨시에게도 징역 35년과 4100만디나르의 벌금을 선고했다. 벤 알리의 나이가 74세라는 점을 감안할 때 실제 징역형이 이뤄질 경우 그가 살아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날 선고는 사실상 종신형과 다름없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반독재 혁명 성공 후 5개월 만에 열린 벤 알리 재판은 중동민주화 바람 속에 축출된 독재자에 대한 첫 공식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벤 알리에 대한 선고는 이집트 민주화운동 성공 후 축출된 호스니 무바라크(83)는 물론 반정부 시위가 내전으로 비화한 리비아, 사실상 내전 조짐을 보이는 시리아의 독재자들의 향후 거취 문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30년간 장기집권해 온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권력에서 물러난 뒤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은거하다 지난 4월부터 부정축재와 시위대 살해 혐의 등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 최근 위암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벤 알리는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후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상태라 이날 재판은 궐석상태로 진행됐다. 벤 알리는 재판에 앞서 성명을 통해 “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적이 없고 튀니지에서 도피하지도 않았으며 지난 1월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난 것은 암살 정보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수사당국이 그에 대한 기소 이유로 밝힌 미국 달러 및 무기 불법 소지, 시위대 사살 등 93개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이날 공판은 벤 알리의 횡령 등 일부 혐의에 대해서만 선고됐으며 다른 혐의에 대한 공판은 변호인 측의 요청에 따라 오는 30일로 연기됐는데 살인과 학살 등 혐의에 대한 공판은 군법원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20일 “벤 알리 집권 동안 그의 인척들은 튀니지의 은행과 통신, 부동산 업체 등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해 왔고 440억달러 규모의 튀니지 경제 중 3분의 1가량을 이들이 통제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어 “벤 알리의 인척 100여명의 재산을 동결한 튀니지 당국 관리들은 벤 알리 인척들의 경제 네트워크가 너무나 방대해서 이를 너무 빨리 해체하면 튀니지 경제가 더욱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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