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장식 / 허균 지음 / 돌베개

궁궐은 조선왕조의 전통문화와 그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왕과 신하들이 조회하는 현실정치의 중심이기도 했으며, 왕과 왕비를 포함해 궁중 나인들이 거처했던 생활공간이기도 했다. 궁궐이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으로 인해, 궁궐의 장식물과 조형물들은 다양한 유형으로 분화되어 있으며 그 상징적 의미 또한 풍부하다. 정치의 중심답게 왕조의 정치적 이상을 재현하고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장식과 설치물을 배치했다.

한편 생활공간으로서 벽사진경의 인간적 소망과 상상력을 담은 장식과, 궁궐을 운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장식물을 궁궐 구석구석에 두었다.

이 책은 궁궐의 여러 가지 장식의 조형적 특징과 기능에 국한된 설명을 넘어 그것에 담겨 있는 문화적 의미까지를 짚어낼 수 있는 상징에 대한 해석을 일목요연하게 제공하고 있다.

또한 유교정치의 이상과 옛사람들의 미의식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창조된 궁궐의 다양한 신수상·문양·건축 장식 등의 상징 의미를 쉽고 친절하게 해석한다. 해치·봉황·서초·황룡·사자 등의 형상으로 재현된 장식들과 더불어, 당가·등널·곡병·일월오봉병·향로 등 궁궐 설치물들의 상징적·문화적 연원을 살펴보고 그 아름답고 장엄한 세계에 새롭게 접근하고 있다.

이 책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궁궐 장식의 기호적 수준의 의미를 따질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내재한 상징 의미의 층위를 해석함으로써 궁궐 장식이 조선왕조의 유교 정치문화를 심미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가 궁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 궁궐 장식의 심원한 상징세계에도 한 원인이 있다. 궁궐은 거대한 유교적 상징세계로서 계획되고 지어졌다. 봉황이나 용처럼 잘 알려진 동물상부터 사신상과 십이지신상 같은 동양의 우주관에 관한 이해가 선행돼야 파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궁궐에 있는 십이지신상을 보고 우주의 시간론에 대한 옛사람들의 관념을 떠올릴 수 없는 건, 상징에 대한 인식과 경험 체계를 공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궐 장식이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상징’이라는 관점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상징 해석은 장식의 기능적·미학적 이해에 그치지 않고, 문화와 종교적 심성 등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저자는 “넓게는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욕망의 내면을 살피고, 좁게는 제작 동기나 목적 등을 파악한 후 직관과 상상력을 동원하면 어느 정도 상징의 진실에 육박할 수가 있다”며 “지식이 알고 있는 사실이나 내용을 말하는 것이라면, 안목은 이를 종합·분석·해석하는 능력이다. 궁궐 상징물에 대한 참된 이해는 이러한 안목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또한 궁궐의 장식물과 조형물들을 현장감 있는 200여 컷의 컬러 도판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여기에 적확한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독자들을 궁궐 구석구석으로 안내한다. 내용과 밀착되어 있는 도판을 통해 읽는이는 궁궐을 직접 살피며 답사하는 듯한 체험을 맛볼 수 있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