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시해와 일본인 / 김문자 지음, 김승일 옮김 / 태학사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누가 저질렀을까. 재일교포 2세 역사학자인 저자는 명성황후 시해가 일부 주장처럼 일본 ‘낭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 아니라 일왕 직속의 군 최고통수기관인 대본영(大本營)에 의해 저질러진 국가 범죄라며 그 근거를 제시한다. 지금까지 명성황후 시해는 당시 공사였던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주도로 일본 낭인과 장사치들이 저질렀다는 것이 일본 학자들의 주장이었다.

책에 따르면 명성황후 시해의 주범은 대본영의 육군 수뇌부인 가와카미 소로쿠(川上操六) 육군 대장, 야마가타 아리도모(山縣有朋) 육군대신 등이었고 이들의 계획에 따라 육군 중장 출신의 미우라가 조선공사로 부임해 명성황후를 시해했다. 미우라는 주범이 아니라 종범(從犯)이었던 셈이다. 저자는 명성황후에게 처음 칼을 휘둘러 치명상을 입힌 인물로 일본 육군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宮本竹太郞)를 지목했다. 저자는 미우라가 공사로 서울에 부임한 이후 일본공사관과 도쿄(東京) 외무성 및 대본영과 주고받은 통신기록과 주한 일본공사관 기록, 외교문서 등을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저자는 명성황후 시해가 청일전쟁 이후에도 일본이 계속 조선에서 전신선(電信線)을 확보해 두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한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청일전쟁의 강화가 성립하고 삼국간섭이 일어난 후에도 조선에서 일본이 전신선을 확보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일본군의 주둔을 희망하는 일본 정부와 대본영의 뜻을 받은 전권공사 미우라 고로가 그 장애물이 되는 왕비-러시아와 결탁하여 일본에 대항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던 왕비-를 제거하고 친일정권의 확립을 목표로 경성수비대라는 일본의 군대를 사용하여 일으킨 모략사건이다.” 당시 한반도에서는 서로전신(의주~서울), 남로전신(서울~부산), 북로전신(서울~원산)이 있었고 이를 통해서만 조선과 대륙 침략을 노리는 일본군에게 실시간으로 전문(電文)을 전할 수 있었다. 또 흥선대원군이 미우라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종래 이에 대한 증거로 제시됐던 것들은 날조됐다는 사실도 밝힌다.

국내 대표적인 명성황후 연구자인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추천사에서 “김씨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왕비 시해’는 (일본의) 명백한 국가 범죄가 성립된다”며 “김씨의 연구 성과는 근대 한일관계사의 틀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것으로 반가움을 넘어 전율을 느낀다”고 평가했다.

김도연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