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 홍인희 지음 / 교보문고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8도를 시찰한 후 태조 이성계에게 시찰 결과를 보고하면서 각 도의 특징을 사자성어로 읊었다. “경기도는 경중미인(鏡中美人)이라, 거울 속 아름다운 여인과 같이 겉은 화려하고 좋으나 실속은 없는 듯합니다. 충청도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맑은 바람과 밝은 달처럼 부드럽고 고상하며 풍류를 즐깁니다. 전라도는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같이 멋을 알고 붙임성이 있으며 유연합니다. 경상도는 태산준령(泰山峻嶺), 큰 산 및 험한 언덕과 같이 선이 굵고 웅장하며 험악한 기개를 갖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암하노불(巖下老佛), 바위 아래 앉아 있는 늙은 부처 형상으로 어질고 인자하며 유순합니다. 황해도는 춘파투석(春波投石), 봄바람 타고 살랑대는 물결에 돌을 던지는 듯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평안도는 맹호출림(猛虎出林), 숲속에서 나온 호랑이처럼 매섭고 사나우며 용맹한 데다 과단성이 엿보입니다.”

태조는 자신의 고향인 함경도가 빠지자 정도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든 나무라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말하라”고 했다. 머뭇거리던 정도전이 조그만 목소리로 “이전투구(泥田鬪狗), 개들이 진흙탕에서 뒹굴며 싸우는 꼴입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태조가 얼굴을 찌푸리자 눈치 빠른 정도전은 “석전경우(石田耕牛), 돌밭을 일구는 소처럼 근면하고 우직한 면도 있습니다”라고 말을 돌렸다. 그제야 태조는 파안대소하며 상을 내렸다고 한다.

이 책은 우리 땅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 소개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인 강원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책의 부제가 ‘정철도 몰랐던 21세기 관동별곡’이다.

저자는 강원도의 명소마다 깃든 사연과 순박한 심성의 민초들이 삶을 일구어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맞섰던 영웅호걸들의 웅장한 서사시도 강원도를 무대로 펼쳐진다. ‘암하노불’로 불리는 강원도 사람들의 독특한 성향에 대한 소개도 빠지지 않는다.

저자에 따르면, 강원도 사람들에 대한 평가와 표현은 대체로 일관성을 갖고 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이 ‘암하노불’ 또는 ‘암하고불(巖下古佛)’이다. 암하노불은 암하고불이 의도적으로 변질된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말기 선종이 득세하게 되면서 저명한 선승들이 강원도 일대 사찰로 모여들어 수도하게 된다. 이런 연유로 고려 말까지는 강원도 사람들을 선승들에 빗대 ‘암하고불(巖下高佛)’, 즉 ‘바위 아래 앉아 있는 덕이 높은 부처’라는 뜻으로 불렀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유학자들이 ‘암하고불(巖下古佛)’ 또는 ‘암하노불’로 격하시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러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금강산 유점사에서 승병을 일으키는가 하면, 일제강점기에는 만해 한용운 선사가 설악산 백담사에서 그 유명한 ‘님의 침묵’을 짓고, 한암선사는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며 일본의 패망을 예견하는 등 암하고불(巖下高佛)의 전통은 계속되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이밖에도 강원 정선의 고려 충신들에게서 유래한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이야기와 대관령 길을 넓힌 죄로 죽어서도 벌을 받았던 고형산(1453~1528)의 사연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