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레드북 (my little red book) / 레이첼 카우더 네일버프 엮음, 박수연 옮김 / 부키

‘초경을 막 시작한 딸아이, 이제 내가 껴안아 줄 수도 없고/ 생이 끔직해졌다/ 딸의 일기를 이젠 훔쳐볼 수도 없게 되었다’

황지우 시인의 시 작품 한 구절은 사춘기에 접어든 딸에 대한 아버지의 소외감을 절실하게 드러낸다. 첫 월경이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초경(初經)은 소녀가 은밀하게 치러내야 할 것처럼 여겨졌다. 과거엔 엄마를 제외하고 집안의 누구에게도 드러내서는 안 되는 금기의 언어였다. 그러나 최근엔 딸의 초경을 축하하기 위해 실반지를 사 주는 아빠도 있으니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100명의 초경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대 소녀에서 100세 가까운 할머니까지 연령대가 폭넓다. 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아프리카 케냐, 가나, 아시아의 중국, 인도인의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여자 친구의 초경을 알게 된 경이감을 계기로 자궁내막 전문의가 된 남성의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엮어낸 이는 현재 예일대 학생인 방년 20세의 아가씨다. 12세 때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 수상스키를 타다가 느닷없이 초경을 만난 그는 약국에서 생리대가 아니라 성인용 요실금 기저귀를 구해 몸에 차게 됐다. 이 일로 집안의 웃음거리가 됐는데, 놀랍게도 친척 여자들로부터 그들이 감춰왔던 초경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듣게 됐다. 고모 할머니는 1942년 유대인 강제 이송을 피해 폴란드를 빠져 나가던 중 초경이 온 덕분에 나치의 몸수색을 피해 강제수용소행을 면했다고 털어놨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은 것을 계기로 레이첼은 주변 여성들에게 초경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나 하나 모으면서 나는 땅 속에 숨겨진 보물을 우연히 발견한 기분이 들었고, 이 이야기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개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초경을 겪는 태도는 각양각색이다. ‘호밀밭 파수꾼을 떠나며’의 작가 조이스 매드너드는 부끄러움 때문에 초경을 숨겼던 이야기를 고백했다. 반면에 영화 ‘주노’의 시나리오 작가 디아블로 코디는 자신의 초경이 “오렌지빛 혈액으로 승리의 상징인 횃불의 색깔이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책은 생리대와 관련한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익살스러운 어투로 들려준다. 어린 시절에 엄마의 생리대를 핫도그로 착각했다는 한 여성의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낸다.

돈이 없어서 생리대를 구하지 못해 학교에 1주일이나 결석을 해야 하는 케냐의 여학생 이야기나, 생리 때마다 집안의 화장지가 부족해지는 것을 걱정해야 했던 중국 문화혁명 시기의 일화는 애틋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