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의 드라마틱한 몰락으로 자리가 비게 될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직을 둘러싼 유럽과 신흥경제국 간의 신경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1945년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에 의해 IMF가 탄생한 이후 유럽 출신이 총재직을 맡아온 관행이 과연 이번에도 유지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포문을 연 사람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다.

그는 16일 기자들과 만나 “스트로스칸 총재가 사임하면 차기 총재도 유럽이 맡아야 한다”고 못박았다. “중기적으로는 신흥국들이 총재직을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를 고려할 때 유럽 출신 인사가 차기 IMF 총재를 맡아야 할 좋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대변인을 통해 아예 “EU가 차기총재 후보를 내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은 IMF 총재직을 유럽이 맡는 대신 세계은행 총재 자리는 미국이 갖는다는 묵시적 합의에 따라 양대 국제금융기구의 수장 자리를 분점해왔다.

그러나 신흥경제국들의 도전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한국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는 IMF 쿼터조정에 합의, 중국이 기존 6위에서 2위로 껑충 뛰어오르는 등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이 모두 쿼터 10위권에 진입한 바 있다. 한국도 18위에서 16위로 상향 조정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AP통신 등은 쿼터 증가로 발언권이 확대된 신흥경제국들이 유럽 총재 관행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일제히 전망했다. 유럽 출신의 차기총재 유력후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55) 프랑스 재무장관이다. 백발에 이지적인 풍모를 지닌 그는 주요 8개국(G8) 최초 여성 재무장관이자 FT의 ‘유로존 최고 재무장관’ 1위에 선정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고든 브라운(60) 전 영국 총리는 본인이 IMF 총재직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의사표명을 한 적은 없지만,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최근 “엄청난 재정부채를 남긴 인물을 IMF 총재로 추천할 수 없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신흥경제국 출신의 유력후보로는 케말 데르비슈(62) 전 터키 경제장관 및 전 유엔개발계획(UNDP) 총재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재정위기에 처했던 터키 경제를 회복시킨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세계은행과 UNDP 등 국제경제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왔다. IMF는 스트로스칸 체포 이후 존 립스키 총재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차기 총재는 6, 7월쯤 확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