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힘 냅시다” 지진해일 피해와 방사능 공포를 피해 온 이재민들이 20일 오후 도쿄 아다치구 도쿄부도칸 대피소에 모여 대책 등을 논의하고 있다. 박준희특파원 vinkey@munhwa.com

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 피해가 비켜가고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노출 위험도 적은 도쿄(東京)의 시민들은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런 도쿄 시내 한복판에도 지진과 원전 사고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도쿄 관내에 마련된 대피소에 모여든 피난민들은 하루바삐 위험이 사라져 고향의 집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21일 오전 도쿄 북부의 아다치(足立)구 아야세(綾瀨) 지역에 위치한 도쿄부도칸(東京武道館)에는 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에 도쿄에 머물고 있는 피난민 200여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진과 쓰나미가 직격한 이와테(岩手)현과 미야기(宮城)현, 그리고 원전 사고로 대량의 방사선 노출 위험에 빠진 후쿠시마(福島)현에서 위험을 피해 무작정 도쿄로 상경한 사람들이다.

도쿄 당국이 외부로부터 피난온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도쿄부도칸 대피소의 분위기는 안정을 되찾은 주변의 도쿄 시민들과 사뭇 달랐다. 도쿄부도칸 주차장 입구에는 소방차와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수시로 지인들과 통화를 하는 피난민들의 모습이 긴박함과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도쿄부도칸 내부의 유도 경기장에는 이미 피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대피소에서 만난 시오다(여·37)씨는 후쿠시마 원전 남쪽 지역인 이와키(いわき)시에 거주 중이었지만 지금은 남편과 두 아들 등 4인 가족이 모두 도쿄에서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오다씨는 “아이들이 원전의 방사성 물질에 노출될까 걱정돼 무작정 연고도 없는 도쿄로 상경했다”며 “처음에는 호텔 등을 전전했지만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여비 등을 아끼려고 대피소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도쿄에 머물다가 지진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어 대피소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 게임용 컴퓨터 그래픽 제작 일을 한다는 도무라(30)씨는 “회사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 도쿄에 왔다가 지난 11일 대지진이 발생해 교통편이 끊겨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며 “처음에는 도쿄의 지인 집과 호텔 등에서 지내다 은행 자동입출금기가 마비돼 돈이 떨어져 대피소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현재 도쿄 당국은 도쿄부도칸 외에 외곽의 조푸(調布)시에 위치한 ‘아지노모토(味の素)’ 스타디움 등 2곳에 약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소를 마련, 운영 중이다. 도쿄부도칸 관계자는 “대피소에서는 피난민들에게 기본적인 잠자리와 식수를 제공하며 식사는 주변 식당이나 마트, 편의점 등에서 각자 해결해야 한다”며 “이런 조건에도 피난민들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수용시설을 계속 설치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 = 글·사진 박준희특파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