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후쿠시마(福島)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 물질 유출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기자는 순탄치 않은 여정을 거쳐 도쿄(東京)로 철수해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지진과 방사능 피해 위험 지역을 벗어나려는 많은 교민들을 뒤로하는 발걸음은 내내 무겁기만 했다.

18일 오전 1시쯤, 기자는 이번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고 방사능 노출의 위험까지 안고 있는 미야기(宮城)현 센다이(仙臺)시를 벗어나 도쿄(東京)에 도착했다.

지난 14일 도쿄에서 센다이로 가기 위해 비행기와 버스, 택시 등 갖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해 10시간 이상이 소요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버스와 신칸센(新幹線) 등 여러 교통 수단을 거쳐 10여시간 만에 도쿄에 이를 수 있었다.

지진이 발생한 지 7일이나 지난 17일에도 센다이에서 도쿄로 바로 올 수는 없었다. JR센다이역에서 도쿄로 직통하는 버스가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긴 했지만 버스를 타기까지의 대기 시간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날 오후 2시쯤 주센다이총영사관에서 운영하는 교민 수송 버스를 타고 니가타(新瀉)현으로 이동해 지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니가타와 도쿄 사이를 운행하는 신칸센 열차에 탑승하는 우회로를 택해 탈(脫) 센다이를 강행했다.

센다이에서 니가타로 향하는 길도 순탄치는 않았다. 통제된 고속도로에는 지진으로 도로가 파여 아직도 안전판에 의해 통제된 부분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버스가 이동하는 내내 내리던 굵은 눈발과 좁은 시야도 피난객들의 마음을 졸이게 했다.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도 일반 승용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재해파견(災害派遣)’이라는 팻말과 현수막을 단 일본 육상자위대의 트럭과 지프차들이 수시로 영사관 버스 옆을 스쳐지나갔다. 간간이 보이는 민간 대형 트럭들도 긴급 물자를 수송이라도 하는 듯 바삐 센다이시를 향하고 있었다.

센다이에서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구니미(國見) 휴게소라는 곳도 지진의 여파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인적이 끊긴 이곳 휴게소의 상점들은 모두 폐쇄됐고 주차장에는 대형 트럭 서너 대만이 들어서 있었다.

다시 버스로 1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반다이산(磐梯山) 휴게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 사는 냄새가 풍겼고 센다이 출발 후 내내 긴장해 있던 교민들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날 오후 7시쯤 드디어 버스가 JR니가타역에 도착하자 교민들은 밝은 표정으로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다.

지진 피해가 거의 없었던 니가타에서는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도 가능하고, 열차 등을 통해 일본 국내의 안전지대로 대피하는 것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버스가 출발하는 당시까지만 해도 영사관에는 센다이 등 피해지역을 벗어나려는 교민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고 영사관 직원들도 자신들의 안위는 뒤로한 채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먼저 떠나는 피난객들과 취재진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이 광경은 떠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센다이에 두고 온 마음의 짐을 찾기 위해서라도 꼭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품게 하고 있다.

센다이·도쿄 = 박준희특파원 vinke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