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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승화하고 과도하게 불만을 터트리지 않는 유가족들의 절제, 계획정전 아래에서 자발적으로 전원 스위치를 내려놓는 준법성, 비상상황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질서의식, 식료품 가게에서 꼭 필요한 것만 사고 남을 위해 생필품을 남겨놓는 타인 배려….

규모 9의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아비규환 속에서도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준 일본인들에게 전세계적으로 경이와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국내 일본 전문가들은 일본인들의 높은 질서의식 뒤에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사회문화와 100년 국민교육의 힘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이웃 나라인 한국과 한국인은 절제, 준법, 질서, 배려와 같은 ‘4대 미덕’을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현구(역사교육) 고려대 교수는 “메이와쿠 가케루나(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라는 문구는 일본에서 가장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라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을 떠나 집단이 정해놓은 룰(rule)인 규범과 예절, 질서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강민 (일본언어문화학) 한양대 교수도 “일본은 지진, 화산 폭발과 같은 천재지변이 1년에도 수백번 일어날 만큼 위급한 상황이 잦았던 나라”라며 “지난 1995년 고베(神戶) 지진 때도 보여주듯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행동은 질서를 지키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천재지변이 잦다는 환경적 요인 외에도 봉건사회의 뿌리가 깊었던 일본의 역사적 배경 또한 일본인들의 질서의식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 교수는 “일본은 늘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며 “옳고 그름을 떠나 집단의 결정에 따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15세기 춘추전국시대를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집단의식이 성장했고 전후에 이르러서는 일본 특유의 기업문화가 사회질서 문화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성장한 일본인들은 집단의식이 강한 만큼 이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 즉 질서의식이 사회생활의 기본이 된 것”이라며 “때로는‘이지메’문화처럼 집단을 거부했을 경우 개인에게 집단적 처벌이 이뤄지는 ‘징벌문화’ 또한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이렇게 집단의식에 기초한 일본인들의 질서의식은 일본의 오랜 국민교육의 결과로 후대로 이어지고 있다. 서정완 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일본인들의 배려문화는 100년 이상 국가 주도로 이뤄진 대국민 교육의 결과”라며 “민족성이나 문화 등이 따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일본인들의 몸에 배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서 소장은 “일본의 민족성이 남다르기 때문에 공동체 의식이 강한 것이 아니라 학교 교육, 가정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며 “전후 패전국으로서 혼란스러웠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세우기 위해 일본이 가장 주목한 것은 바로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윤정아·고서정기자 jayo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