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가 이 세상에 태어남에 있어 어려서는 힘써 학문을 하고, 학문을 하여서는 그것을 시행하고자 하는 법이다. 도덕(道德)을 수양하여 관직을 받는 것이 어찌 유독 이록(利祿)만을 위하고 명예만을 노려서 그렇게 하는 것이겠는가. 장차 그 뜻을 시행하여 백성들에게 펴고자 하는 것이다.”

1651년(효종 2) 지금의 충청남·북도인 호서(湖西)지역에서 대동법이 실시되는 데 정치적으로 지대한 역할을 한 김육(金堉·1580 ~ 1658)이 지은 ‘호서대동절목(湖西大同節目)’의 서문입니다. 대동법의 전국적인 시행을 위해 평생을 바친 조선 후기 대표적인 개혁관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육의 포부를 느낄 수 있는 글이지요.

대동법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양란을 겪으며 누란의 위기에 처했던 조선왕조가 이후 300년간 존속할 수 있었던 배경이 된 핵심 개혁정책이자 리빌딩 사업의 하나였습니다. 사실 조선의 중앙정부와 왕실이 매년 소비했던 200여개 항목 이상의 공물과 진상품의 수취 방식을 개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16세기 초 조광조가 처음 제기했지요. 선조(재위 1567 ~ 1608) 임금이 즉위하자 관료와 결탁한 모리배(상인)들이 공물의 납부를 대행한 뒤 중간에서 이윤을 취하는 ‘방납(防納)의 폐단’을 막기 위해 이이와 유성룡 등은 공물을 쌀로 내게 하는 수미법(收米法) 또는 공물작미(貢物作米)의 실시를 본격적으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8년(선조 41) 이원익의 주도로 경기선혜법이 실시된 뒤 치폐를 겪었던 삼도대동법(충청·강원·전라도)이 최종 확정·시행되고 공물가도 1결(結)당 12두(斗)로 통일된 것은 1674년(현종 15)의 일이지요. 1430년(세종 12) 일반 백성을 포함해 17만여명의 의견을 묻는 등 장기간의 논의를 거쳐 세법을 확정한 뒤 전국적 시행까지 60년이 걸린 전세제도인 공법(貢法)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된 ‘조선 최고의 개혁이자 혁명적인 대역사’였습니다. 대동법의 실시로 이전 각 고을에서 1결당 70두 정도를 부담했던 공물의 양이 12두로 내려갔으니 일반 백성들의 조세부담률이 약 80% 정도 줄어든 셈이지요.

지난 2010년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역사비평사)을 펴낸 이정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소 연구원은 “17세기 중반 대동법이 실시되지 않았다면 조선왕조의 르네상스기로 알려진 18세기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그는 최근 출간된 계간지 ‘역사비평’ 94호에 기고한 글에서 대동법의 실시로 균등한 과세를 실현했던 17세기 조선 사회가 오늘날 한국 사회보다 더 공공성이 높은 사회였을지 모른다고 주장하네요. 복지 논쟁이 한창인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 조선 후기 대동법 논의·시행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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