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대외교 이면 백성의 눈물 있었다

조선시대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사대부 관료들이 남긴 기록이나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의 독특한 사행풍습과 이국적인 체험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사신으로서 보고 들은 것을 전적으로 기록한 ‘조천록’이나 ‘연행록’은 말할 것도 없고 문집에도 상당한 분량이 실려 있지요. 풍문을 전해 들은 것이라 부정확한 것도 있지만 견문한 기록 가운데는 중국 사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내용도 적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 최근 번역·출간된 선조(재위 1567~1608) 때 대사헌과 이조판서 등의 벼슬을 지낸 이기(1522~1600)가 쓴 필기잡록인 ‘간옹우묵’(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이 주목을 끄네요. 이기가 1579년(선조 11) 성절사(聖節使)로 북경에 다녀오면서 느낀 것들을 기록한 내용 때문입니다. 고려말 저명한 문인인 이곡·이색 부자의 후손인 이기는 북인에 속하며 사후 청백리에 뽑힐 정도로 청렴했던 인물이지요.

이기의 기록에 따르면 외국 사신들은 중국에 들어갈 때 국경 근처에 이르면 반드시 예물(禮物)이라 일컫는 선물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물건의 많고 적음에 구애됨 없이 토산품으로 준비하면 됐지만 예물(禮物)이 변해 예물(例物·으레 바치는 선물)로 바뀌면서 물목(物目) 이름까지 미리 정해졌지요. 예물(例物) 말고도 별인정(別仁情)·별구청(別求請)이 있어 여러 가지로 힘들게 했는데 이기도 일행의 모든 짐을 뒤져 겨우 요동을 관할하던 요동도사 관리가 요구한 액수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이기는 사신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미 중원 땅으로 가는 길에 요구하는 것이 전보다 2배나 늘었으며 요동에서 더욱 심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있었지요. 물론 예외도 있어 요동지역의 군대를 총괄했던 총병 마운룡은 정해진 예물도 받지 않았고 조금도 요구하는 것이 없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마운룡은 이기가 북경에 이르렀을 때 탄핵을 받아 관직을 그만두고 맙니다. 다른 장수들처럼 뇌물을 바치거나 권세가를 섬기지 않아 탄핵을 당한 것인데 만력제(재위 1572~1620) 초기 장거정(1525~1582) 개혁정치의 한계도 확인할 수 있지요.

명나라 관리 못지않게 조선의 사신들도 국경을 넘기 전 연도에 위치한 지방 관청에 요청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 외에도 선물용으로 부채와 모자를 많게는 만 개 혹은 수만 개까지 가져갔다고 하네요. 16세기 전반 사신단을 감찰하는 임무를 띤 서장관의 권한이 강화돼 정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면서 사신 접대 경비도 늘어났습니다. 이기는 조선 사신단의 병졸들이 사행 길에 길가의 곡식을 망가뜨려 중국인들이 우리 사신들이 출입하는 것을 한결같이 싫어했다는 기록도 남기고 있지요. 조선과 중국 백성들의 희생을 대가로 유지된 것이 조선과 중국 간의 사대외교였습니다.

ycchoi@munhwa.com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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