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왕제색도·인왕산일기 / 글 이갑수, 사진 도진호/궁리

1년여 전 ‘하늘의 입구’로 불리는 인왕산 기슭으로 둥지를 옮긴 출판사 ‘궁리’의 대표인 저자가 인왕산과 인왕산 동네 사람들, 그리고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의 일상을 기록한 ‘산문집’이다.

독서와 문인, 등산과 막걸리, 국악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인왕산에 푹 빠져버린 저자가 매일 우직하게 인왕산을 응시하며 풀어낸 사색과 시장사람들의 구수하고 인정미 넘치는 사람사는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다.

책은 1715년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후 260년이 지난 서울의 풍경을 빛과 글로 풀어낸 독특한 시도로 눈길을 끈다. 저자가 2009년 9월 홈페이지 ‘궁리닷컴(www.kungree.com)’을 개편하면서 매주 2회 인왕산의 모습을 전하겠다는 발원을 한 것이 1년여 지나 2권의 책으로 나왔다. 겸재 정선의 집터인 인곡정사에서 매주 3차례 같은 지점에서 인왕산 사계를 사진으로 중계하고 그날그날 기록을 곁들인 것이 ‘신인왕제색도’다.

또다른 요일에 매주 3차례 인왕산에서 남산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내의 모습과 그에 맞는 글을 담은 것이 ‘인왕산일기’로 세상에 선보였다.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에서 모티브를 얻은 책은 풍경 사진의 단조로움을 다채로운 청국장처럼 구수하며 감칠맛나는 사람 얘기로 커버한다.

‘신인왕제색도’에는 인왕산의 구름과 안개, 천변만화의 하늘과 중턱의 ‘모아이’바위, 석굴암, 나무 등 등산하면서 보고 느낀 자연미와 더불어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사연을 저자의 시선으로 캐치한다.

인왕산의 자비로 복락을 누리는, 출판사 인근 효자동 통인시장 터줏대감들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다. ‘파리채로 파리와 씨름하다 똥막대기처럼 꼿꼿하게 앉아 낮잠을 즐기는 개성상회 아저씨’는 ‘장좌불와(長坐不臥)의 큰스님’에 비유된다. ‘형제이발소’ 주인은 이발기술을 가르쳐달라는 영화 ‘효자동 이발소’의 주인공 송강호의 제의를 단칼에 거절했는가 하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오라는 제의를 가게를 버릴 수 없어서 거절한 ‘대단한 아저씨’다.

인왕산 왼편 사직파출소 옆 국보급 청국장 맛으로 서민들을 사로잡는 ‘사직분식’, 술꾼들에 인기있는 ‘옥호대로 감자탕집’, 그리고 인근 금천교시장의 칼칼한 조개탕이 유명한 ‘다래’와 하루 영업을 끝내고 바둑을 두는 ‘만선 쭈꾸미집’ 부부 등. 이들 터줏대감 얘기가 없었다면 이 책은 ‘앙꼬 빠진 찐빵’이었을 게다. 그렇다고 책이 맛집 등 별스럽게 신기한 것을 좇은 여행기가 아니라 ‘제자리 여행’이고 일상적인 서울 서민들의 풍속화다.

사람들은 인왕산 치마폭 아래 옛정 그득한 골목길에서 인정미 넘치게 살아간다. 시골 출신인 저자가 애써 인왕산 자락에 터를 옮긴 연유도 이런 속사정 때문이 아닐까.

한때 시인묵객들의 풍류가 숨쉬던 인왕산을 수시로 오르내린 저자는 왁자지껄한 통인시장이 ‘이야기의 소굴’이 돼버렸다고 고백한다.

정충신기자 csju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