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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4일 시작한 2010서울연극올림픽이 막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중반 한국대표는 22일부터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입니다.

산울림의 ‘고도…’는 1969년 원작자 사뮈엘 베케트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원로 불문학자 오증자씨가 옮기고 사실주의극의 대명사 임영웅씨 연출로 국내 초연했습니다. 이후 세계 공연예술의 도약대로 불리는 프랑스 아비뇽축제, 원작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연극제, 스즈키 메소드의 본산인 일본 도가페스티벌 등 세계 주요 무대에 초청받는 등 거의 매년 국내외 무대에 오르는 명실상부한 국가대표 연극 레퍼토리입니다. 이번 공연은 1988년 서울올림픽 기념축전 이래 모처럼 대극장 버전인데다가 ‘고도…’의 명 포조로 88년 공연 후 국립극단으로 갔던 이문수씨가 다시 포조역으로 복귀한 무대로 주목됩니다.

산울림의 ‘고도…’는 온통 회색인 무대에서 목을 매달기에는 좀 작은 꾸부러진 나무 한 그루 아래서 블라디미르(애칭 디디·한명구)와 에스트라공(〃 고고·박상종)이 누군지도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끝없이 펼쳐내는 장광설입니다. “우리는 꽁꽁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 “피가 난다” “건강하다는 증거지” “격려의 말이 필요하단 말이요” “기억력이 농간을 부리는 거야” “이 지랄은 더 이상은 못하겠다” “내일 목이나 매자. 고도가 안 오면”….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며 수다를 떨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희망과 절망, 기쁨과 우울을 가볍게, 때로 무겁게 교직해 냅니다.

베케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긴 이 ‘황당한’ 부조리극은 잠깐 졸다가 봐도 크게 내용이 달라지지 않을 정도로 앞뒤의 맥락이 없습니다. 시점도, 장소도, 등장인물의 성격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불분명한 가운데 오늘이 어제 속에서 되감기(rewind)되면서 시가 나오기도 하고 철학이 등장하기도 하며, 액션이 펼쳐지다가 깊은 우울에서 죽음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내일의 희망을 찾지요. 움직이자고 하면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뭔지 모를 ‘고도를 기다리며’.

세계연극올림픽위원장인 그리스 연출가 데오도로스 테르조풀로스는 산울림의 ‘고도…’에 대해 “40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연출력”이라며 “인간의 삶을 깊이 통찰, 일상의 비극을 풍자적으로 멋지게 그려내 배우술이 죽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연극의 전범”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이번 서울연극올림픽은 이미지극의 대가 로버트 윌슨이 베케트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로 막을 열었습니다. 윌슨의 신경증적인 베케트와 산울림의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한국적 베케트가 과연 관객들에게 어떤 감동의 차이로 다가설지 기대됩니다. 02-747-2904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