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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성당기행 / 조은강 지음 / 황소자리

정호승 시인이 경북 영주의 부석사에서 불상으로 모셔진 부처에게 경배를 드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로 시작하는 명시 ‘그리운 부석사’를 쓴 분이라 불자(佛子)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종교를 지녔더군요.

“그런 사람이 왜 절에서 부처님께 절을 하느냐는 소리를 들어요. 그냥 웃고 맙니다. 마음의 평화를 주는 성인께 인사를 드리는 것에 어떤 종교적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책 ‘나의 아름다운 성당기행’을 읽다가 정 시인의 말을 떠올린 것은 책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주 전동성당의 위치적 특징 때문입니다.

영화 ‘약속’의 촬영 장소였던 전동성당은 1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지닌 건물답게 고색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감탄을 자아내지요. 가톨릭 신자라면 이곳이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된 장소라는 데 마음이 숙연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동성당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전각인 경기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유럽풍의 가톨릭 성전과 유교 전통을 잇는 한국 전통 가옥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지요.

저자는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순교지인 전동성당에서 아픈 절규와 비명의 흔적을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기도의 힘이 쌓인 곳이어서일까, 마냥 아늑하고 평화롭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파당을 지어 상대를 물어뜯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위로하는 평화! 14개 성당을 순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저자는 한때 회사 일에 온 열정을 다 바친 직장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 일로 예기치 않은 소송에 연루됐고, 그로 인해 심신이 피폐해져 세상 사람들에게 만 정이 떨어졌습니다. 그때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상처를 다스렸고, 그 경험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그런 저자에게 출판사 대표가 우리나라 성당들을 순례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망설였다고 합니다. 가톨릭 세례를 받은 적이 있지만 성당과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망설임 끝에 순례 여정을 시작한 것은 신앙으로 귀의하겠다는 마음보단 혹시 자신을 찾는 여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감이 작용해서였습니다.

나바위, 풍수원, 공세리, 감곡, 약현, 가실, 양양, 수류, 용소막, 금사리, 남해, 합덕성당 등. 전국 곳곳에 있는 성당들을 찾아다니며, 저자는 아름다운 풍정을 품고 있는 성당일수록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성당들은 찾는 데 애를 먹을 정도로 외진 곳, 아니면 그냥 지나치기 쉬울 만큼 평범한 곳에 있으면서도 수려한 자연과 어울리는 모습으로 찾는 이를 평안히 보듬어 줬습니다.

그런 성당들을 만나면서 저자는 자신에게 그토록 가혹하고 냉정했던 세상, 비루하기 짝이 없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합니다. 생각의 넌출은 나날이 뻗어서 주변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마침내 사람들끼리 서로 부대끼며 사는 모둠살이의 온기에 가닿습니다. 저자가 ‘배론성지’를 함께 여행한 어머니의 사교성에 대해, 또 동네 성당에서 만난 할머니들의 대화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언급할 때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는 독자의 가슴에도 오롯이 전해집니다. 평소 여행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닌데도 이 책을 2주간에 걸쳐 아껴 읽은 것은 그 온기가 일상의 힘이 됐기 때문입니다.

책을 꼼꼼히 읽은 사람이라면 저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릴 것입니다. “나는 성당을 찾아다니면서 새로운 순례를 하였다. 그때마다 내게 다가온 생생한 감동은 차갑게 얼어 있던 내 마음을 녹이고 따스하게 품어 주었다. 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지에 가지 않아도, 두어 시간 거리 떨어진 저 시골의 조용한 성당에서도 영혼은 새로이 타오를 수 있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