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적도 아래의 맥베스’

연극은 현실의 거울이지요. 2010서울연극올림픽 공식초청작인 독일 샤우비네극장의 ‘햄릿’(9월29일∼10월1일 남산예술센터)과 극단 미추의 ‘적도 아래의 맥베스’(10월2∼14일 명동예술극장)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샤우비네극장의 ‘햄릿’은 독일 연극을 대표하는 토마스 오스트마이어가 번안, 연출했고, ‘적도 아래의 맥베스’는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인 정의신씨가 쓰고 미추대표 손진책씨가 연출했습니다. 두 작품 모두 셰익스피어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오스트마이어는 ‘햄릿’을 통해 늙고 병든 유럽에 대한 절망을, 정의신씨는 운명에 희롱당한 맥베스의 비극을 일본인 전범으로 숨져간 식민지 조선인들의 한으로 풀어냈습니다.

오스트마이어의 ‘햄릿’은 진흙 더미 위에 커다란 식탁으로 2중무대를 만들어 놓고 철망커튼을 옮겨가며 장례식장, 대관식장, 결투장 등으로 무대를 변환시키면서 햄릿 왕과 클로디어스 왕, 거트루드 왕비와 오필리어를 1인2역 시키는 등 6명의 배우만으로 이 장대한 비극을 절묘하게 펼쳐나갔습니다.

방관자 햄릿이 현장을 추적하며 캠코더로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철망커튼에 투사되는 가운데 거트루드의 슬픔과 정욕, 오필리어의 순수와 광기가 소름끼치게 변주됐습니다. 술에 취해 쓰러졌던 클로디어스 왕이 유혈이 낭자한 햄릿 왕의 유령으로 일어설 때 객석에서는 절로 비명이 터져나오기도 했지요. 햄릿으로 인해 아버지와 동생을 잃은 레어티즈를 햄릿을 해하려 했던 친구와 1인2역 시킨 것도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방관자 햄릿과 진실을 밝히는 방아쇠 역할을 한 광대를 1인2역 시킨 것을 비롯해 호레이쇼와 로젠버그, 폴로니어스와 마지막 결투의 심판관을 1인2역 시키며 성격을 바꾼 것도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장례에는 결혼의 기쁨이, 결혼에는 슬픔의 만가가 어우러지는 등 이율배반적인 거친 욕망과 무기력이 범벅이 된 2시간 30여분 동안의 진창의 무대 끝에 남아있는 침묵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갈등 속에서 어찌할 수 없는 오늘날 늙은 유럽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남의 전쟁에 끌려가 ‘조센징’으로 차별받으며, 군인도 아닌 군속으로 군인들로부터 멸시받고, 정작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범으로 희생당한 식민지 조선인 부역자들의 운명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움직이지 못한 맥베스의 그것과 너무 닮아있습니다.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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