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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치사(致仕)하게 은퇴하고 싶다 / 김형래 지음/청림출판

“당신도 조직에서 죽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준비하고 사시오.” 퇴직한 선배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경청했을 것입니다. ‘오륙도’ ‘삼팔선’ ‘이태백’을 넘어서 ‘십오야’(15세 아이도 밤처럼 미래가 암울)란 말이 떠도는 시대니까요.

십오야는 과장된 풍자이지만, 실감나는 유행어인 것도 사실입니다. 외환위기 시절 바늘구멍 같은 취업 관문을 뚫고 입사했던 90년대 학번들이 어느덧 40 나이에 도달해 퇴직 공포를 겪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지요.

신간 ‘나는 치사(致仕)하게 은퇴하고 싶다’는 십오야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본 책입니다. 시니어 비즈니스기업의 임원인 저자는 은퇴 전후의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얻게 된 노하우와 스스로의 경험을 전합니다. 요지는 제2의 인생을 제대로 꾸려가기 위해 단단히 준비하자는 것이지요.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치소(嗤笑·코웃음)를 터트렸습니다. 치사(致仕)를 들어 말 장난을 한 게 그야말로 치사하게 여겨졌던 탓입니다. 치사(致仕)는 70세가 되면 나이가 많다며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나던 일을 일컫습니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 고려의 문신 김부식이 치사의 고사를 남긴 인물들입니다. 그런 옛일을 초들어 가벼운 언어 유희를 벌이기엔 이 시대의 은퇴 문제가 너무 무겁지 않은가. 이런 항심(抗心)은 책을 읽어가며 슬몃 사라져 버렸습니다. 70세까지는 일한 뒤에 치사((致仕)하고 싶다는 저자의 열망이 책의 곳곳에서 진정성을 발하는 까닭입니다.

은퇴란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사회 활동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지낸다는 뜻인데, 많은 이들이 이 한가한 시간들을 두려워합니다. 공포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돈 문제입니다. 정기적으로 돈을 벌지 못할 때 과연 남은 인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이 때문에 직장 생활하는 동안에 은퇴 후의 경제 계획을 설계해 둬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합니다. 자신의 자산을 정확히 파악하고 향후 생활비는 얼마나 들게 될지, 주식·보험 상품은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꼭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범박한 상식이지만, 현직에 있을 때 정작 실행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은퇴 공포가 막연히 커지는 것이지요.

나이들수록 주식 등의 위험 자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숫자 100에서 나이를 뺀 만큼 위험 자산을 줄여야 합니다. 50대에는 50%, 60대에는 40%, 70대에는 30% 정도가 좋다는 것이지요.

은퇴를 준비하려는 사람들은 은행에서 현금을 찾는다든지 하는 일상적 업무를 미리 익혀둬야 합니다. 그동안 비서나 부하 직원들, 혹은 아내가 대신 해 주던 일들을 직접 할 줄 알아야 직장 울타리가 없는 사회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죠. 전 세계에 번지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의 열풍에도 동참, 직장의 상하 관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수평적 소통의 즐거움을 맛볼 필요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것이 제2인생의 필수 조건입니다. ‘계단을 사양하지 마라’ ‘BMW(Bus, Metro, Walking)족이 되어라’ ‘남에게 심부름 시키는 일을 중단하라’ 등이 그 수칙이죠.

은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사전에 은퇴는 없다. 새로운 일을 하겠다”는 역설적 의지입니다. 물론 은퇴자의 재취업은 사회 전체의 고용 환경과 관련이 있는 것이지만, 60대에 창업한 KFC를 성공시킨 커넬 샌더스처럼 불굴의 정신으로 악조건을 뚫어나가야 합니다. 그동안의 경륜을 활용해 어디에서든 일을 하며 인생 후반전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지요.

‘50세가 되기 위해선 30년도, 40년도 아닌 5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이 나이를 살며 얻은 암묵지(暗默智)를 활용해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젊은 것들이 늙었다고 무시하는 눈초리를 보내와도 속으로 이렇게 웃어넘길 수 있다고 합니다. “넌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