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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나라의 앨리스/심정희 지음 / 씨네21북스

명품(名品)의 사전적 정의는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입니다. 영어로 옮기면 ‘Masterpiece, Masterwork’ 혹은 ‘Brand-name product, designer label’이라고 한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명품이란 말이 유명 브랜드 이외에 고가 사치품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영어로 옮기면 ‘Luxury goods’라고나 할까요. 실제 효용 가치보다는 남에게 과시하는 용도로 쓰이는 게 현실이지요.

“그런 고가의 명품을 한번도 몸에 걸쳐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중년의 한국 남성으로서 잘 나가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인가요. 명품 하나쯤 걸쳐줘야 폼이 난다는 것을 모르진 않지만, 그런 것에 눈독을 들여본 적이 없습니다. 부담스러운 명품으로 치장하면 ‘개 발에 편자’처럼 어색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런데 몇 년 전부터 해외에 나가게 되면, 가족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위해 면세점 명품 코너를 꼭 둘러보게 되더군요. 젊거나 늙거나 간에 한국 여성들이 외출할 때 명품을 들거나 걸치지 않으면 ‘야코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입니다. 내 가족을 초고가의 명품으로 치장하게 만들 수는 없어도 웬만한 값의 제품 한두개는 사 줘서 기죽지 않게 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이런 변명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명품 코너를 얼쩡거리다 보면 어깨에 부딪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인입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며 한숨을 쉬게 됩니다. 언제부터 우리 한국인들이 해외 명품의 신민(臣民)이 됐을꼬.

새로 나온 책 ‘스타일 나라의 앨리스’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와 에디터들이 반드시 명품 애호가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컨대, 파리 패션가에서 가장 주목 받는 디자이너인 리카르도 티시는 한국 패션잡지의 디렉터인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하, 사실 나도 비싼 옷 잘 안 입어요. 내 옷장에서 제일 많은 옷이 20유로짜리 티셔츠죠. 불편한 옷은 딱 질색이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힘들여 전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명품 브랜드가 훌륭한 패션 스타일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패션 에디터가 되기 전에는 외양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스타일에 신경쓴답시고 ‘카드 대금 불감증’에 걸리는 것을 경계합니다. 저자는 스스로를 ‘스타일’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라고 칭하며 패션 문외한이었다가 전문가로 성장하는 경험담을 진솔하게 소개합니다. “패션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패션계 사람들이 지나치게 수수해 보였던 것은 그들 대부분이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옷을 입기 때문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트렌드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건 트렌드를 너무 잘 알 뿐만 아니라 자신의 스타일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명품을 쫓아가는 대신에 자신의 개성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스타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에세이 형식으로 쓰여진 이 책은 구석구석에서 저자의 명품 소유욕을 어쩔 수 없이 드러냅니다. 그는 케이블방송에 패션 전문가로 출연한 이후 사람들이 자신의 외양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자, 생각이 바뀌었다고 고백합니다. “이전의 내가 프라다의 스커트를 보면서 그냥 예쁜 옷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변화한 뒤의 나는 프라다의 스커트를 보면 입고 싶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한 사람을 이루는 데 있어 외면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아직 변함이 없지만, 이제는 내가 옷을 입는 방식 또한 나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이 말에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옷 입는 방식에 자꾸 신경을 쓰다 보면, 고가의 브랜드로 스스로를 화려하게 꾸미려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지요, 나중에는 돈으로 싸 바른 몸덩어리를 자랑스러워하면서 그것이 천격인 줄 모르게 될 수 있지요. 세련되게 스타일을 가꾸면서도 고가 브랜드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는 것, 참으로 어려운 인격 수양인 듯싶습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