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는 두 다리 사이에 끼어 가슴에 안고 온몸으로 연주하는 악기입니다. 인간의 몸과 가장 많이 접촉, 인간의 음역과 거의 유사한 소리를 내는 악기인 첼로는 아마 가장 관능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악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20세기 이전 첼로는 독주 악기보단 협연 악기로 주로 쓰였습니다. 이렇게 뜨거운(?) 악기를 신의 사랑과 높은 이성, 자연의 질서를 찬미해 온 바로크와 고전 음악이 중용하기는 쉽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첼로는 독주 레퍼토리가 50여곡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첼로의 구약성서로 불리는 바흐의 첼로 무반주연습곡의 경우 20세기 들어 카잘스가 찾아내는 등 첼리스트들이 레퍼토리 발굴에 힘쓴 결과입니다. 토스카니니, 로스트로포비치 등 첼리스트들이 지휘자로 전업한 이유 중의 하나가 레퍼토리 부족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자의식과 낭만, 자유와 실험이 폭발했던 20세기에 예술가들이 이 인간적인 악기를 그냥 놔둘 리 없습니다. 단순히 현을 긁는 전통의 기법 외에 기타처럼 뜯고, 북처럼 두드리는 등 온갖 형태의 실험을 통해 가장 많은 레퍼토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용광로의 중심은 프랑스 파리였지요. 앙드레 나바라, 폴 토르틀리에, 모르스 장드롱, 피에르 푸르니에 등 천재적 첼리스트들이 한꺼번에 등장, 파리를 현대 첼로의 메카로 만들었습니다.

솔로, 실내악, 이론 등 3박자가 조화를 이룬 이숙정(43·사진)씨가 바로 이들 ‘에콜 프랑세즈 비올롱셀(Ecole fran？？ise violoncelle·프랑스 첼로학파)’의 정통을 잇고 있는 첼리스트입니다. 서울대 1학년 때 프랑스 유학을 결행, 3년 만에 파리국립음악원을 마치고 프랑스에서 10여년간 학업과 연주를 병행하다가 1997년부터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실내악단 주자와 솔리스트로 한 해 20∼30회씩 연주회를 가지면서 후배 양성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는 부지런한 자유주의 첼리스트입니다.

그가 2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현대 첼로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레퍼토리로 무대를 만들었습니다. 한국 실내악 붐에 일조한 현대 음악 앙상블 ‘소리’가 내년 10주년에 앞서 단원들의 솔로 무대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비바 누오보 무지카’의 일환입니다.

이씨는 이날 남미의 정열을 첼로의 뜨거운 인간적 음색에 녹여 낸 알베르토 히나스테라의 ‘첼로와 피아노 랩소디 팜페아나 2번’, 현대 첼로의 고정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앙리 뒤티외의 ‘첼로 독주곡 사쉐르의 이름 위에 얹은 3절(3 strophes sur le nom de Sacher pour violoncelle)’, 러시아 특유의 묵직한 서정을 편안하게 풀어낸 알프레드 슈니트케의 ‘첼로와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또 지난해 나인용씨가 작곡, 이씨에게 헌정한 ‘첼로 독주자를 위한 영가’와 이번 무대를 위해 문성준씨가 작곡한 ‘첼로와 전자 음악을 위한 음영’을 세계 초연합니다.

이씨의 꿈은 한국에서 ‘에콜 프랑세즈 비올롱셀’ 같은 ‘에콜 이숙정 비올롱셀’을 만드는 것입니다. 도전적인 지성과 폭발하는 감성이 델 듯 뜨거운 첼로와 한 몸이 돼 만들어 내는 그의 연주에서 그것은 결코 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02-515-5123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