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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 주문 신부 / 마크 칼레스니코 지음, 문형란 옮김 / 씨네21북스

가수 패티 김씨의 남편이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수년 전에 패티 김씨를 만났을 때, 그는 사업가인 남편에 대해 “여성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며 자랑을 하더군요. 남편의 이해와 덕분에 결혼 이후에도 숱하게 공연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도 “국제 결혼은 힘든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국제결혼이 영화에서처럼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언어 장벽, 문화, 사상 차이가 심각하지요. 예를 들어, 난 아이들에게 한국말과 한국식 예의를 가르치려고 본능적으로 노력하는데, 남편은 관심이 없고 아이들은 반발했어요.”

한국의 대표적 가수로서 국제 결혼의 성공적 전범으로 꼽히는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보통의 한국 여성이 외국인과 결혼해서 산다는 것은 말 그대로 보통 일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새로 나온 책 ‘우편 주문 신부’는 캐나다인 남자와 한국인 여성의 결혼 생활을 다룬 것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 애니메이션 작가 마크 칼레스니코가 만든 그래픽 노블(소설처럼 이야기 구조가 치밀한 만화)입니다. 주인공은 캐나다의 소도시에서 빈티지 장난감이나 만화책을 모으며 살아가는 노총각 ‘몬티’와 자신의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에 한국을 떠나 이국의 생활에 몸을 던진 처녀 ‘경’입니다.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두 사람은 신종 결혼 중개 방식인‘우편 주문’을 통해 생면부지로 만나 함께 살기 시작합니다.

몬티는 이국적이고 순종적인 동양인 아내를 꿈꾸지만, 경은 자신의 주관이 뚜렷한 현대적 여성입니다. 대부분의 신혼부부들처럼 알콩달콩 지내는 듯하던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이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편견과 몰이해가 그 삐걱거림의 주범입니다. 예컨대 몬티는 동양계 여성의 신비를 느끼고자 아내 경에게 한복을 입을 것을 자꾸 요구하지만, 경은 자신에게 불편한 한복을 입혀놓고 섹스를 하려는 몬티가 싫어서 몸서리를 칩니다. 비뚤어진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캐나다인 작가의 자기 반성이 담겨 있는 대목이지요.

경이 동양계 여성 사진작가와 교류를 하면서 누드 모델로 활동하자, 몬티는 자신과 가족들을 창피하게 만들었다며 불만스러워합니다. 결혼 생활의 균열 때문에 괴로워하던 경은, 어느 날 몬티가 한국, 일본,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여성들을 모델로 한 누드 사진을 보며 수음(手淫)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몬티가 자신과 사진 속의 여자들을 동일시하고 있었다고 여긴 경은 치욕감과 혐오감으로 치를 떨고, 이후 두 사람은 서로를 할퀴어 상처를 주는 ‘부부 전쟁’에 돌입합니다.

이 책은 이른바 다문화가정이 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국제결혼을 역지사지로 들여다보게 합니다. 다양한 유형의 국제 결혼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특별히 동남아 국가 출신의 여성들과 한국 남성들의 결합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서로가 살아 온 문화와 환경의 차이가 크다 보니, 다문화 가정의 부부 간에 벌어지는 ‘사랑과 전쟁’이 유독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네, 못 사네 하며 서로를 할퀴던 부부들이 화해를 하고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것은, 대부분 ‘부부 전쟁’ 과정을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연민의 정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부부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간 상대에 대한 분노가 식은 후 자신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었던 속물성을 찬찬히 되돌아보면, 인간적 약점이 있는 상대를 더 애틋이 보듬게 된다고 합니다.

국제 결혼도, 그 전쟁의 양태와 강도는 다르지만, 사랑으로 되돌아가는 으뜸의 비결은 역시 연민과 이해일 것입니다. 그것을 ‘우편 주문 신부’의 마지막 대목이 아릿한 여운으로 알려 줍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