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왼쪽부터 신윤복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사시장춘’을 비롯해 중국 청나라시대 작가미상의 ‘춘궁화첩’과 일본 메이지시대 도미오카 에이센의 다색판화 ‘야쿠모의 언약(八雲の契)’.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사시장춘(四時長春)’은 노골적으로 성애를 묘사하지 않고도 남녀상열지사를 절묘하게 표현한 수작이다. 그림 속 툇마루 위에 급하게 벗은 듯한 분홍, 검정의 남녀 신발이 놓여있고, 꼭 닫혀있는 방문 앞에 술상을 든 하녀가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사시장춘’, 즉 ‘일년 내내 봄’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있는 기둥 좌우에는 남녀의 상징처럼 잎이 무성한 소나무와 폭포수가 그려져 있다.

18세기말과 19세기초의 조선시대에선 한양에서 기방을 중심으로 번지던 유흥과 쾌락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신윤복·김홍도 등 풍속화에 능한 화가들이 그린 사실적 묘사와 해학적 표현의 춘화가 성행했다.

중국에선 ‘봄날 밤에 궁궐에서 벌어진 일을 묘사한 그림’이라는 뜻의 춘궁화(春宮畵) 비희도(秘戱圖)가 전해왔으며 명대 후기 들어 번성했다. 명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당인, 구영의 춘궁화를 후대 화가들이 모사했을 정도다. 일본에선 에도(江戶)시대의 우키요에(浮世繪) 판화와 더불어 춘화가 대중적으로 확산됐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 등 3국의 춘화를 중심으로 당대의 성문화를 조명해 보는 ‘러스트(LUST)’전이 오는 14일부터 12월19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 열린다. 3국의 춘화와 성애 표현을 담은 부채 놀이기구 등 도자 생활용품이 선보이고, ‘세크레툼(비밀)’이란 이름의 전시실에선 외설적인 폼페이 유물 등을 수록한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의 소장품 도록 등 19세기 서양의 에로틱아트도 공개된다.

전시회에는 조선시대 후기 춘화첩을 비롯해 일본 우키요에 작가 가쓰시카 호쿠사이, 다색판화의 선구자 스즈키 하루노부, 미인도로 유명한 도미오카 에이센 등 18~19세기 에도시대 작품 및 중국 청대에 제작된 춘궁화첩과 20세기의 활판인쇄 작품 및 성희 관련 공예품도 선보인다. 사실적인 표현으로 성애를 적나라하게 표출시킨 춘화전은 ‘19세 이상 관람가’다.

오는 10월2일 국내외 학자들이 참여하는 춘화 관련 강연회도 열린다. 이 자리에서 ‘조선시대 춘화의 사회성과 예술성’을 주제로 발표하게 될 홍선표 이화여대 교수는 성풍속과 내밀한 욕망까지 담아낸 조선 후기 춘화의 고전으로 신윤복과 김홍도의 화풍을 지목한다. 기방, 색주가의 풍속을 주로 그린 신윤복이나 김홍도의 춘화를 원류로 춘화가 발전했다는 것. 홍 교수는 “빼어난 사생력으로 놀랄 만큼 정확하게 인체를 묘사한 조선 춘화는 진솔한 행위와 은밀한 감정이 실감나게 전달된다”며 현실적인 생동감과 풍류를 조선 춘화의 특징으로 꼽았다.

대담한 성애묘사와 남성 성기의 과장된 표현이 두드러진 일본 에도시대의 우키요에 춘화에 대한 두 학자의 연구 결과도 눈길을 끈다. 일본학자 하아카와 몬타 국제일본문화센터 교수는 우키요에 춘화가 유녀(遊女), 부유층 등의 성 유희를 다뤘다는 고정관념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에도시대 일반 시민의 성풍속을 담고 있는 데다 남녀노소가 두루 즐겼다고 주장한다. 때로 글을 곁들여 만담처럼 실소를 자아내는 우키요에 춘화는 결코 남성전용이 아니며 에도시대 책 대여점의 주요고객이던 여성과도 친숙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편 영국 학자 타이몬 스크리치 런던대 교수는 “춘화가 에도시대 사람들이 삶의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가족과 가정생활에 대해 느끼던 불만족과 불안을 우회적으로 담아냈다”고 밝혔다.

신세미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