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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독약 한방울(1,2권) / 존 엠슬리 지음, 김명남 옮김/사이언스북스

연금술에 기원을 둔 화학은 세계의 본질에 대해 연구하는 가장 오래된 학문 중 하나다. 연금술의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비금속을 금으로 바꿔 주는 ‘철학자의 돌’, 만능의 영약 ‘엘릭시르’,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물질을 녹이는 보편용해제 ‘알카헤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근대까지 끊임없이 과학자들을 유혹했던 연금술은 현대에 이르러 미신임이 증명됐지만 현대 화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부산물로 많은 ‘독약’이 확인됐다.

이 책은 2010년 현재 발견된 117개 원소 가운데 수은과 비소, 안티모니, 납, 탈륨 등 치명적인 다섯 가지 원소에 얽힌 독약 또는 환경 재앙의 미시사다.

연금술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수은이다. 연금술사들은 금을 비롯한 모든 금속이 수은, 황, 소금으로 이뤄졌으며 그중에서도 액체 상태의 금속인 수은이 가장 중요한 성분이라고 믿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연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비록 84세까지 장수했지만 때때로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를 보였는데 수은 중독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머리카락을 현대과학으로 분석한 결과 납, 비소, 안티모니는 정상보다 4배, 수은은 15배가 높았다.

영국왕 찰스 2세는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렸다. 의회와 사이가 나빠 프랑스왕 루이 14세와 왕과 신하의 관계를 맺고 재정을 의존해야 할 정도였다. 그는 금을 만들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연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수은 중독으로 추정되는 발작과 경련으로 숨졌다.

수은은 금을 제련하고 펠트와 치과용 충전제를 만드는 데 널리 쓰여 모자제조공, 도금사, 치과의사, 전기산업 종사자, 형사 등에게 수은 중독이 많았다. 1950년 공장에서 배출한 수은이 박테리아에 의해 메틸수은이 되고 이것이 생선에 축적돼 사람에게 옮겨져 중추신경계의 이상이 발생한 미나마타병 이후 수은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다.

비소는 이집트 파라오시대부터 1600년대까지 붉은색과 주황색을 내기 위해 널리 쓰였으며 18세기 카를 셀레는 삼산화비소구리를 이용해 셀레그린이라는 멋진 초록색 안료를 개발했다. 셀레그린은 19세기까지 벽지로 널리 쓰였는데 침묵의 살인자 역을 톡톡히 했다. 비소 중독 때문에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나폴레옹의 방도 셀레그린 벽지였다.

안티모니는 아랍에선 안료로, 그리스에선 화약의 원료로 사용됐다. 안티모니 가루는 ‘변질의 가루’로 불리며 금속들을 잘 섞이게 하는 성질이 있어 활자를 만드는 데 많이 쓰였다. 약용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모차르트의 죽음이 안티모니 중독으로 의심되며,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로 의심됐던 이발사 조지 채프먼이 세 명의 아내를 독살하는 데 안티모니를 썼다.

납식기가 일상화한 로마제국의 멸망 원인 중 하나로 납 중독이 꼽히기도 하는데 헨델과 베토벤도 납 중독으로 고통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백선 등의 피부병에 탈모용 치료제로 쓰이기도 한 탈륨은 황화탈륨이라는 치명적 독약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델라를 암살하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한편 바륨, 베릴륨, 카드뮴, 크로뮴, 구리, 플루오린, 니켈, 칼륨, 셀레늄, 나트륨, 텔루륨, 주석 등은 순수한 원소일 때는 독성이 거의 없지만 수용성 화합물일 때 독약이 된다. 수용성 바륨은 소량으로 중추신경계를 마비시키고 다량이면 심장을 멎게 한다. 형광등 제조, 처분에 사용되는 베릴륨에 중독돼 숨지는 사례가 있었는데 아이자 아시모프의 SF소설 등에 미스터리한 독극물로 등장한다. 카드뮴은 간, 조개, 쌀 등에 많이 들어 있는데 1930년대 카드뮴에 오염된 쌀을 먹고 주민들이 집단 발병한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다.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