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실장

섬뜩하다. 대한민국의 지도층과 지식인 사회에서 공공연히 난무하는 말만 들어도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다. 집권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했던 정치 지도자들이 서로 공개적으로 주고받은 언사만 해도 그렇다. “등에 칼을 꽂았다” “권력 내부의 추악한 암투” “배신과 배반의 음모” “적과 내통” 등 무협지와 조직폭력배 사회에서나 나올 법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관련해서도 “이씨 집 하인, 박씨 집 종”이라는 출마 국회의원의 막말 표현까지 TV 방송에 버젓이 등장했다. “병역기피를 위해 10년 넘게 도망다닌 사람이 지도부에 입성하면 집권당은 병역기피당이 된다”는 주장도 있었고, “만사형통(萬事兄通)”에 이어 “만사정(鄭)통”이라는 해괴한 조어(造語)도 오갔다.

국가 공조직을 사적 성격의 단체나 비선(秘線) 조직이 지휘하는 일도 드물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막가파 조폭들과 다를 바 없으면서도 그게 무슨 잘못이냐는 식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공직 사회에서도 하극상(下剋上)이 일상화하다시피 하고, 위계 질서를 무시해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특히 좌파 성향 인사들의 위계 질서 무시와 막가파식 행태는 더 가관(可觀)이다. 도지사가 도청의 일개 총무과장 인사를 예정했다가도 직원들의 노동조합이 반대하자 보류하는 일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친(親)전교조 교육감들의 행태는 비근한 예를 대표할 만하다. 전교조 강원지부장 출신의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초·중등교육법의 규정에 따라 전국 초등 6학년, 중 3학년, 고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13∼14일 시행한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한 공문을 전교조 입맛에 맞게 변조해 일선 학교에 전달한 것이 정당하다는 식으로 우기기까지 했다고도 알려지고 있다.

김승환 전북도 교육감 또한 친전교조 성향 그대로 국가 위임 사무인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교과부 방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어깃장을 놓았다. 교과부 공문은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홍보에 만전을 기하라면서 ‘교원들이 체험학습을 유도·승인하거나 평가를 거부하는 등 시행 지침에 위반되는 행위를 할 경우 징계 대상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전북 교육청은 미루다가 마지못한 듯이 일선 학교에 뒤늦게 전달한 지 2일 뒤 멋대로 ‘교과부 공문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내려보내는 황당한 행태를 당연한 일처럼 자행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급기관이 상급기관을 우습게 여기는 빗나간 풍조가 만연하니, 교사 단체인 전교조가 학교 교장 앞으로 ‘보고’를 요구하는 공문까지 버젓이 보내는 것 아니겠는가. 중·고등학생 중심의 청소년인권단체로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 등장하는 단체의 이름을 차용한 ‘아수나로’가 ‘교원평가제 반대 선언문’을 통해 교사와 학생 간에 “계급장 떼고 말 놓고 얘기하자”고 제안하는 패악을 당연시하는 배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은 “잘못된 교육을 바꾸고자 한다면 어서 빨리 학생들에게 힘과 권력을 내놓을 일”이라면서 “학교는 의무적으로 교사·학생 간의 권력관계를 버린 소통의 시간인 야자타임을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말세’니 ‘인간 말종’이니 하는 말은 이런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촌음을 아껴 학업에 매진하라고 강조해야 할 교사나 교육감이 학생들에게 전국 단위로 치르는 시험은 줄세우기라며 거부하고 ‘소풍’을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으로 선동한다. 일류 학교가 있어선 안되며 모든 학교가 평준화돼야 한다고도 강변한다. 경쟁력의 우열 또한 금기시한다. 어른과 아이가 맞짱을 떠야 한다면서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질서까지 파괴의 대상으로 삼는 일부 학생의 일탈도 그 연장선이다.

대한민국 일각이 시대착오적 혼돈과 무질서와 야만의 사회인 막가파의 ‘해방구’로 역주행하고 있다. 일단의 세력에 의한 그 해방구화는 정치판에서부터 교육 현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어찌 섬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