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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말한 적 있지. 그런데 그 맘 아직 안 변했어?”

“그럼요. 안 변해요. 절대 안 변할 거예요. 맹세해요.”

“맹세? 맹세란 깨지기 위해 있는 거야.”

“그럼 충성서약서 쓸까요?”

유미는 용준의 간절한 눈빛을 보았다.

“귀여워.”

유미가 용준의 얼굴을 끌어다가 입을 맞췄다.

“저 바람둥이라 생각하시겠지만요. 사실 저 같은 놈이 곤조, 아니 지조가 더 있는 놈이라고요. 제대로 된 상대만 만나면요.”

“전에 용준씨가 내 주변을 살피기 위해 나를 미행한 적 있다고 했지? 그때 검은 세단이 내 주변을 얼쩡거린다고 했나?”

“에이, 그때 쌤한테 욕 먹고 저 이제 그 짓 안 해요.”

“혹시 내가 곤란에 처하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말, 나 믿어도 될까?”

“당근이라니까요. 왜, 요즘 무슨 힘든 일 있죠?”

“으음…그게….”

“내 그럴 줄 알았어요. 얼굴이 어두웠어요.”

“내가 혹시 부탁하면 누구 뒤를 좀 미행하거나 캐 봐 줄 수 있나?”

“그럼요! 사실 저 말인데요. 이건 비밀인데, 예전에 심부름센터에서 일한 적 있어요. 명령만 내려주시면 그런 거 잘 할 수 있어요. 누구예요, 도대체?”

“조만간 필요할 때 내가 알려줄게.”

“윤 이사님하고 결혼하실 거예요?”

“…!?”

“딴 사람은 몰라도, 깊은 사이라는 거 전 알고 있어요.”

“용준씨는 아래는 실한데 입이 가벼운 거 알고 있지?”

“무슨 말인지 알아요. 물론 입단속 잘할 거고요. 쌤은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어요. 어쨌든 전 쌤이 행복하면 좋겠어요.”

“고마워.”

“가끔 이렇게 만나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제 욕심일 뿐이죠. 아녜요, 절 내치지만 말아주세요.”

유미가 용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끔 만나줄게. 이렇게 매력적인 줄 몰랐어.”

“정말요? 하지만 제가 걸림돌이 되면 전 언제나 그림자처럼 뒤에 있을게요. 왠지 쌤은 제가 소유할 수 없는 아주아주 이상적인 여자 같아요. 그냥 영원한 베아트리체요. 그래서 다른 남자의 소유물이 되는 것도 왠지 어울리질 않아요.”

유미는 용준의 그 말에 잠시 수긍이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퍼뜩 깨어나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참! 리필 됐니?”

“정말 이상해요. 그 소리에 이렇게 얘가 고개를 드는 것 좀 보세요.”

유미가 용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 참 말 잘 듣는 거북이구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유미는 고대가요인 구지가(龜旨歌)를 부르며 용준의 거북이를 얼러댔다. 유미의 협박에 잔뜩 성이 난 용준의 거북이는 머리를 꼿꼿이 들고 유미를 향해 돌진했다. 잔뜩 젖은 침대를 버려두고 두 사람은 그대로 소파에 누워 얽혔다. 자신감을 얻은 용준은 다시 한 번 유미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힘을 아래에 쏟았다. 유미는 용준의 탄력적이고 힘 있는 어깨를 안으며 무슨 일이 있어도 유미를 지켜주겠다는 용준의 다짐을 믿었다. 몸도장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