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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를 사랑하는가 / 진 트웬지 등 지음, 이남석 엮고 옮김 / 옥당

“인터넷 게시판에서 다른 사람 욕을 못하게 하고, 영상물 불법다운 로드도 못하게 해야 해요. 그러려면 인터넷 속도가 한 3일 정도만 ‘퀵’이 아니라 ‘슬로’였으면 좋겠어요. 속도가 너무 빠르니까, 그걸로 나쁜 짓들을 하는 거예요.” 정부의 한 장관이 사석의 저녁 모임에서 농담으로 던진 말입니다. 좌중을 즐겁게 하려는 의도이기는 했으나, 정부 각료의 언사로는 가벼운 느낌을 주더군요. 그럼에도 인터넷 게시판에 대한 항심(抗心)만큼은 크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의 자유스러움을 옹호하는 이들도 끔찍한 악플들에 대해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네티즌의 상당수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적군 취급하며 총칼보다 더 날카로운 언어의 무기를 휘두릅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 따라 정도가 다르지만 세계적 증후군(syndrome)이라고 합니다. 미국 샌디에이고 주립대 심리학과 교수인 진 트웬지는 그 원인을 ‘나르시시즘(Narcissism) 전염병’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는 조지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키스 캠벨과 함께 펴낸 책 ‘나는 왜 나를 사랑하는가’에서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기애가 지나치게 강한 나르시스트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얼마든지 난폭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자신만은 뭔가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젊은 나르시스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대학생들은 개인 사정으로 시험을 보지 못했을 경우에 재시험의 기회를 주면 고마워했으나 요즘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교수에게 “선생님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잖아요”라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저자들의 한숨소리를 듣자니 씁쓸한 웃음이 배어 나옵니다. 미국의 사례들이 우리와 너무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녀도 야단치기는커녕 흐뭇하게 쳐다보는 부모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니까요.

나르시시즘 전염병이 현대에 퍼지게 된 으뜸의 요인은 부모들의 과보호라는 것이 두 심리학자의 지적입니다. 신세대 부모들은 자녀를 권위로 짓누르지 않고 눈높이를 맞춘 친구가 되어주기 위해 애씁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어하지요. 이렇게 좋은 의도를 지닌 양육 방법은, 그러나 ‘특별한 내 아이’를 만들고 싶어하는 부모의 이기적 심리와 맞물려 과도한 관대함으로 변질됐습니다. 아이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매사를 부모가 챙겨줍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을 지닌 나르시스트로 성장합니다.

인터넷, 방송 등 현대의 미디어는 나르시시즘 전염병을 전파하는 주요 매개 노릇을 합니다. 오로지 유명인만 부각하고 튀는 언행에 주목하는 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유명해져야 한다는 허욕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유명해지기 위해 살인도 불사하겠다는 나르시스트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나르시스트들은 자신의 신념을 사랑한 나머지 세계의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을 오히려 아름다운 일로 여깁니다.

저자들은 현대의 국가 공동체가 이러한 나르시시즘 전염병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그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인터넷, 방송과 거리두기를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만, 면벽수도하는 수행자가 아니라면 이 정보화 사회에서 그게 쉽겠습니까. 그러나 자녀들이 이기적인 행동을 했을 때 반드시 혼을 내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는 꼭 칭찬을 하라는 권유는 소박하나마 따를 만한 것이지요.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