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밴쿠버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한국 휠체어컬링대표팀이 21일(한국시간) 은메달을 획득한 후 대표팀의 홍일점 강미숙(42)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자신의 외로운 삶을 지탱해준 노모 한옥분(77)씨를 떠올린 것이다. 2000년부터 만성질환 악화로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강미숙은 “어머니가 평소에 장애를 입고도 메달을 따오는 게 참 기특하다고 말했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따낸 은메달을 어머니의 목에 걸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동계장애인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메달의 숫자가 아니다. 그들은 어려운 재활과정을 거쳐 올림픽 무대에 섰다. 이번 올림픽은 그들의 ‘인간승리’를 기리는 축제 한마당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도전과 투혼의 드라마를 연출, 비장애인에게도 운명에 만족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값진 교훈을 안겨 주었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애초에 알파인스키의 한상민(30)과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임학수(21)를 메달 후보로 점찍었다. 그러나 모두 ‘노메달’에 그쳤다.

한상민은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알파인 좌식스키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낸 주인공. 생후 1년만에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된 한상민의 삶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교 재학중에 스키에 입문, 새로운 삶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된 그는 금속세공일을 하며 고가의 스키장비를 구입, 훈련에 매진했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 ‘솔트레이크 영광’의 재현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도전은 자체로 ‘금메달감’이다.

또 크로스컨트리스키의 임학수는 교정시력 0.1로 눈앞의 사물 형체만 어렴풋이 볼 수 있는 시각장애 5급이다. 기상이 악화되면 시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경기에서도 코스를 안내하는 ‘가이드 러너’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마사’로 일생을 마쳤을 자신의 숙명을 딛고 올림픽 무대에 섰다. 22일 오전 열렸던 크로스컨트리 남자 시각장애 스프린트 1㎞ 추적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그의 표정은 밝았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하반신마비 장애 선수 5명으로 구성된 휠체어컬링의 예상치 못했던 은메달 획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 드라마다. 대표팀의 부주장인 김명진(39)은 “세계대회에서 다른 선수들과 기량을 겨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너무 좋았다”며 “컬링 빙판에서는 장애가 없구나 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25명의 선수 모두 신체의 불편함과 주변의 왜곡된 시각을 딛고 자신의 삶에 ‘올림픽 출전’이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올림픽 무대에 섬으로써 그들은 이미 모두 메달리스트다.

이번 대회는 한국 장애인스포츠에 과제도 남겼다. 대회 개막에 앞서 윤석용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은 “대체적으로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고 시설도 완비된 선진국에서 성적이 잘 나온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대회였던 2010밴쿠버동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6개(은6·동2)로 종합 5위를 거두며 20위에 오른 일본(은3·동2)에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장애인올림픽에서는 일본이 금메달 3개(은3·동5)로 종합 6위에 오르며 18위의 한국(은1)을 앞질렀다. 선진국 수준을 가름한다는 장애인스포츠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한참 뒤져 있다. 장애인스포츠에 대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걸맞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