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설립된 펭귄북은 영국 최초의 대규모 출판사다. ‘보들리 헤드’란 출판사의 임프린트로 시작해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독립출판사로 발전한 펭귄은 영국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펭귄 북디자인’은 디자인을 열쇠말로 펭귄 70년의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저자인 필 베인스는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마틴 미술&디자인학교에서 강의하며 직접 책을 쓰고 디자인도 하는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비평가. 서체를 만들며 그래픽 디자이너로도 활동하는 저자는 책을 통해 책의 모양을 결정하는 데 기여한 아티스트와 다자이너의 역할, 이를 둘러싼 영국의 전반적인 출판 상황, 표지 디자인의 발전상 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책에서 압권은 역시 500개가 넘는 표지 디자인 이미지다. 저자 이름에 강세 표시가 있는 1935년의 책 ‘애리얼(ARIEL)’의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에서, 2000년대의 감각적이고 세련된 디자인의 책들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흥미로운 도판들로 다양하게 책을 꾸몄다. 이 도판만 봐도 펭귄북의 역사는 20세기 세계 북디자인의 역사와 동의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북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그래픽 디자인이었다. 책에 따르면 펭귄의 초기 디자인은 예부터 전해온 인쇄업의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부흥하면서 디자인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우선 표지 디자인이 내지에서 분리되어 전문화했고, 책 한권을 만들기 위해 전문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사진가들도 동시에 고용됐다. 북디자인이 단순히 내용물을 담는 그릇을 넘어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된 것이다. 여기에는 그래픽 디자인에서 발달해온 전략적 사고, 시각적 감각, 그리고 이들을 통합해주는 유기적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이제 북디자인이 마케팅에 가장 중요한 도구이자 한 출판사의 이미지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른 것은 비단 영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펭귄북의 고전적 형태를 완성한 얀 치홀트, 문고판에 대한 시각적 스테레오타입이 된 마버 그리드를 탄생시킨 로멕 마버, 책의 주제로 단숨에 파고드는 박력 있는 디자인으로 유명한 데릭 버솔 등 ‘펭귄맨’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시대정신과 디자인의 변화를 반영, 여러가지 형태로 바뀌어온 펭귄 로고의 변천도 눈길을 끈다.

북디자인이나 출판에 대한 꿈을 키우는 학생이나 출판종사자뿐 아니라, 책 전반에 관심 있는 일반 독자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