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강진 사태 이후 국제사회는 연일 아이티 지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대국들이 서로 아이티 재건을 돕겠다고 나섰고, 부채 탕감까지 약속했다. 그러나 아이티는 미국, 프랑스 등 강대국의 실력행사장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국제사회는 생색내기용 지원 약속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중·남미 정상들은 9일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 모여 아이티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남미국가연합(UNASUR) 회원국들은 아이티 수출품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고, 페루는 아이티 재건을 위한 1억달러 기금 조성 방안 등을 제안했다. 앞서 캐나다 이칼루이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에 참석한 재무장관들은 아이티 대외채무를 탕감해준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아이티의 경우 그동안 상환액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빚을 줄여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르네 프레발 정부의 경제·사회개혁 성과를 인정해 지난해 9월 12억달러의 빚을 이미 없애줬다. 현재 아이티에는 약 10억달러의 채무가 남아 있는데 이 중 절반인 5억달러는 미주개발은행(IDB)에서 빌린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아이티가 IDB에 내야 할 2년치 원리금 1800만달러를 대신 갚아줬고, 미국에 진 채무 전액을 탕감해줬다. 나머지는 주로 대만과 베네수엘라에서 꾼 것인데 이들 두 나라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아이티에 상환 요구를 하지 않는다. 베네수엘라는 1월26일 아이티 채무 2억9500만달러를 면해줬다.

미국과 프랑스는 재건 작업을 주도하는 문제를 놓고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서로 다른 계산을 하면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지만, 양국간 의기투합이 되는 지점도 있다. 그것은 ‘좌파 정권’의 출현을 막는 것이다. 지진 사태를 기회로 친미성향의 르네 프레발 정부가 무너지고 남아공에 망명중인 아리스티드가 좌파정권을 만들 경우 미국으로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프랑스 역시 아리스티드가 재임중에 요구했던 210억달러에 달하는 식민지 배상 문제를 덮으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

김성훈기자 taran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