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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3년 ‘64킬로비트(Kb) D램’ 개발에 성공하자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질문은 ‘우리나라가 미국·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성공한 것이 맞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회장비서실 기획팀장으로 근무했던 이형도(67·사진) 삼성전기 부회장(상담역)은 1일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접견실에서 기자와 만나 “64Kb D램 개발은 초등학생이 대학생을 따라잡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로 인해 전 세계가 앞으로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게 선대 회장의 신념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 부회장은 “선대 회장은 국가 산업 전반을 반도체 등 첨단산업으로 시급히 재편해야 나라가 산다고 생각하셨다”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 밑에서 산 것이 뼈에 사무쳤는지 국가가 튼튼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고 말했다.

호암은 다른 사업의 경우에는 경영 일체를 위임했으나 반도체 사업만큼은 본인이 직접 챙겼다. 이때 호암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인물이 이 부회장이다. “사업 실패는 국가에 해를 입히는 데다, 자식을 믿고 맡긴 부모에게도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악”이라고 늘 강조해온 호암은 치밀하게 사업을 준비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회장은 “한번은 64Kb D램 개발을 막 시작할 때 선대 회장이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긴장이 풀어진 모습을 보고 거의 한 달 동안 매일처럼 연구소가 목표의식도 없고 정신무장이 전혀 안돼 있다고 질타하신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연구원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반도체 개발에 실패하면 삼성도 죽고, 나라도 죽는다”는 호암의 뜻을 이해하면서부터였고, 그 후 연구원들은 64㎞ 야간행군을 하면서 64Kb D램 개발 각오를 다져나갔다.

그는 “선대 회장은 1985년 이래로 3년 동안 가격 폭락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맞는 속에서도 1메가비트(슌D램 공장을 무리해서 만들도록 하고 1987년 11월 타계하셨다”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그로부터 6개월 만에 반도체 사업은 기적처럼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를 벌어들이는 효자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수년간 엄청난 누적적자로 생존까지 걱정해야 했으나 호암의 선견지명 덕분에 반도체 강국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는 게 이 부회장의 회고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