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이 경세치용(經世致用)을 위한 학문인 것만은 아니다. 송나라 이후의 신유학, 특히 성리학은 유학을 중심으로 선불교와 노장을 흡수통합한 형이상학이자 자기수양을 중시하는 실천철학이다. 퇴계 이황을 비롯한 조선조 선비들은 마음이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수양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탐구하고 또한 실천했다. 조선조 성리학자들이 마음 수련의 교과서로 삼았던 책 ‘심경(心經)’이 ‘주자학의 마음훈련 매뉴얼’이란 부제를 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간됐다. 한형조 교수를 비롯, 권오영, 최진덕, 이상일, 이동화 등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속 연구자들은 책에서 ‘심경’의 체제와 내용, 정치 사상사적 의미에서 주자학 수행의 구체적인 방법과 현대적 적용 가능성 등을 다각도로 파헤쳤다.

‘심경’은 주희(朱熹)의 제자인 송나라 학자 진덕수(眞德秀)가 유교의 수많은 전적 가운데 심학(心學), 즉 ‘마음 수련’에 요긴한 성현의 격언들을 모아 놓은 책. 명나라 초기의 학자 정민정(程敏政)은 여기에 학자들의 해석과 설명들을 덧붙여 ‘심경부주(心經附註)’를 간행했다. ‘심경’은 중국에서 단 한 권의 주석서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백안시된 것에 비해 조선에서는 주세붕, 이언적, 이황, 이이, 조식,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에 의해 강론되면서 100권이 훨씬 넘는 주석서가 나왔다.

권오영 교수는 이처럼 ‘심경’이 유독 조선에서 각광받은 이유로 당시 조선이 처했던 사회적, 사상적 상황을 든다. 조선이 1000년에 걸친 불교시대를 마감하고 성리학을 새로운 종교적, 정치적 이념으로 내걸었으나 수신(修身)의 측면에서 불교의 영향력은 조선 중기에 이르도록 여전히 강대했다는 것이다. 불교의 수행법을 대체할 수신법을 찾고 있던 선비들에게 주자학의 수행 요체를 담은 ‘심경’이 전해진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심경’이 조선 선비들에게 알려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황은 “‘심경’을 얻은 이후에야 비로소 심학의 연원(淵源)과 심법(心法)의 정미(精微)함을 알았다”며 “‘심경’이 곁에 없으면 엄한 스승과 좋은 벗을 잃은 듯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황이 도산에 물러나 은거할 때도 아침마다 깨어나면 이 책을 유장하게 읊음으로써 하루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심경’은 ‘근사록(近思錄)’과 더불어 최고의 성리학 수신 교과서가 되었을 뿐 아니라 왕들의 성학(聖學) 교재로 추천돼 경연에서 강론되기도 했다.

최진덕 교수에 따르면 ‘심경’은 선불교의 ‘선정(禪定)’을 대체할 수 있는, 주자학의 ‘경(敬)’ 공부에 관한 책이다. 주자학의 본체론이 ‘이(理)’를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그 본체를 회복하기 위한 공부론은 ‘경’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경’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로는 ‘주일무적(主一無適)’, 또는 ‘상성성(常惺惺)’이 꼽힌다. 하나를 주로 함이라는 뜻의 ‘주일’과 다른 곳으로 가지 않음을 뜻하는 ‘무적’의 합성어인 ‘주일무적’은 마음의 수렴, 또는 전일(專一)을 의미하고, ‘상성성’은 늘 깨어 있음을 뜻한다.

책에 따르면 평범하고 한가할 때 ‘주일무적’은 텅 빈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말하나 유사시의 ‘주일무적’은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중함을 의미한다. ‘상성성’은 유사시에 날뛰지 않고, 무사 시에는 혼침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경’은 선불교의 좌선이나 노장의 좌망(坐忘·망상 없는 무심의 경지)과도 비슷하나 인간세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과 다르다.

이창일 박사는 “‘심경’의 수행법은 선불교나 노장과 달리 인간세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주자학의 부침과 함께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수행법이 되었다”며 “일상의 움직임이 자연성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상태가 돼야 한다는 ‘심경’의 통찰은 제도와 관행이 바뀐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