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정하종기자

저작물 표절과 불법 유통이 도를 넘었다. 영화, 음악, 방송, 출판물 등 저작권 콘텐츠 무단 복제 및 유통으로 인한 연간 피해액만 1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툭하면 터지는 학계의 논문 표절과 출판물의 오역·졸역 문제도 여전하다. 이 같은 문제들은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으로 가는 데 결정적인 장애가 됨은 물론, 일부 부가 가치 시장을 고사 위기로 내몰고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저작권보호센터를 찾아 불법 저작물과의 24시간 전쟁 현장을 살펴봤다.


“A사이트에서 불법 음악 파일이 검색됐습니다. 삭제 요청 메일 발송하겠습니다.”

지난 12월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 연구원들은 밤새 ‘아이캅(ICOP·Illegal Copyrights Obstruction Program)’ 시스템이 찾아낸 불법 콘텐츠 보고서를 보며 후속 조치에 한창이었다.

‘아이캅’은 지난해 3월부터 가동 중인 불법 저작물 모니터링 시스템. 주요 웹하드 및 P2P 사이트와 포털 사이트 등을 검색해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 저작물을 자동으로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연구원들의 모니터 가득 띄워진 창들은 ‘아이캅’ 시스템이 주요 사이트를 검색하고 불법 저작물 여부를 인식한 뒤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련의 활동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아이캅’은 자동으로 불법 저작물을 찾아내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24시간, 365일 내내 모니터링이 가능하다. 다만 불법 저작물이 거래되는 사이트가 수시로 생겼다가 없어지고 사용자 이용환경이나 메뉴를 바꾸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프로그램의 보고서를 보고 실제 삭제 요청이나 고소·고발 등 후속 조치를 판단해야 한다.

현재 가동 중인 ‘아이캅’ 시스템은 불법 음악 파일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1월부터 단계별로 가동되는 ‘아이캅II’ 시스템은 여기에 영상물의 추적까지 가능하도록 업그레이드됐다.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불법 영화, 드라마, 방송 콘텐츠도 저작권보호센터의 감시망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웹하드, P2P와 같은 특수유형 인터넷서비스업체(OSP)뿐 아니라 포털 사이트의 카페, 블로그 및 이용자제작콘텐츠(UCC) 등 개방형 OSP까지 검색이 가능합니다.”

김상진 기술연구팀장은 “세계 최초로 개발된 불법 저작물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저작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 콘텐츠를 발본색원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면서도 “유통되고 있는 불법 콘텐츠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이용자들의 인식 전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저작권보호센터가 검색 기술과 모니터링 노하우를 제공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내용 기반 특징점 인식 기술을 개발해 만든 이 시스템은 국내 콘텐츠뿐 아니라 해외 콘텐츠까지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확장될 예정이다.

문은숙 연구원은 “초반 가동 때와 비교하면 불법 음원은 많이 없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1대 1 공유와 같은 개인 불법 파일 거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에 있는 저작권경찰 서울사무소는 저작권 침해 사례를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하는 역할을 한다.

지난해 12월 저작권 위반 사범에 대한 불법 수익금을 몰수하는 가시적 성과를 낸 것도 이들의 공이다. 개정 저작권법 발효에 따른 첫 성과로 화제를 모았지만 연구원들은 아직 불법 저작물 유통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이영래 서울사무소장은 “헤비업로더(불법 저작물을 대량으로 유통시키는 사람)뿐 아니라 해당 웹하드업체 등 OSP를 처벌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이지만 서버 임대업자 등 사실상 범죄 행위를 주도하거나 방조하고 있는 이들을 공범이 아닌 정범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보호센터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8년 한 해 동안 온·오프라인에서 발생한 잠재적 저작권 침해 규모는 음악 부문에서 약 2397억원, 영화 부문에서 약 2074억원, 방송 부문에서 약 796억원, 출판물 부문에서 약 3417억원, 게임 부문 약 976억원 등 모두 1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경윤 저작권보호센터 센터장은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서 가장 시급한 부문 가운데 하나가 정당한 저작권을 보호하고 불법 저작물을 뿌리 뽑는 일”이라며 “불법 저작물은 유통시키지도, 이용하지도 않는 성숙한 시민 의식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현기자 offram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