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준예산 집행 관련 대책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헌정 사상 최초의 ‘준예산 편성 사태’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준예산이란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회계연도 개시일(1월1일) 이전에 국회에서 의결되지 못한 경우 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적인 예산을 뜻한다. 현행 법률에 따르면 준 예산이 편성될 경우 ▲헌법 또는 법률이 정한 기관의 유지운영 ▲법률상의 지출의무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 용도가 국한돼 있다. 신규 사업은 전혀 할 수 없고 국가 경제의 ‘명맥’만 간신히 이어갈 수 있도록 유지한다는 의미다.

준예산은 1960년 4·19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3차 개헌으로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면서 도입됐다. 이에 따라 준예산이 집행되면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로 간주해 내각이 총사퇴하고 국회가 해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후 여러 차례 헌법이 개정되고 국가 체계도 대통령제로 바뀌었지만 후속 입법조차 없이 헌법에 선언적인 문구만 남은 제도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 제도는 헌법과 예산회계법에 간단히 문구는 남아있지만 사실상 실체가 없는 것”이라며 “헌정 사상 초유의 준예산제도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것”이라고 말했다.

준예산은 최소한의 국가기능 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어 최근 경제위기에 대응해 마련한 각종 확장적 재정정책은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 1학기부터 도입할 예정이었던 ‘학자금 상환제도’는 시행조차 못해 본 채 무산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학자금 상환제도의 수혜 인원을 107만명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신종 인플루엔자 A(H1N1·신종 플루)에 대비한 항바이러스제 추가 비축과 급성 전염병 격리시설 건립도 불가능해지고 사이버테러 대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55만명의 공공일자리 제공도 중단된다. 이에 따라 희망근로사업 등과 같은 1조6000억원에 이르는 직접고용사업이 진행되지 않아 25만명의 실직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또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도 중단되면서 아동시설과 노인시설, 장애인시설 등이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된다. 특히 저소득층 및 근로자 서민주택 자금지원에 차질이 생긴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중단돼 많은 한계 중소기업이 부도위기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내년 정책자금 지원을 받는 중소업체는 21만5000개에 달한다. 또 내년에 5만8000개 업체에 지원하기로 예정돼 있는 고용촉진장려금도 없어져 임금체불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가 지연되면서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경기에도 ‘치명타’를 입힐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제도를 실제로 시행할 경우 폐해는 이루 말할 수조차 없다”며 “국회가 연말까지는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기를 마지막까지 기대하고 있으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해동·음성원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