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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소녀가 머리를 길게 늘어트리고 곱게 얼굴 화장을 한 채 고개를 살포시 숙이고 있는데, 앞뒤로 붉은색 계열의 꽃들이 에워싸고 있다. 소녀의 머리에는 하얀 나비가 앉아있고 손에는 휴대전화가 쥐어져 있다. 환상적이면서도 완전히 비현실적이지 않은, 묘한 분위기다. 일본 영화 ‘미래를 걷는 소녀’(감독 고나카 가즈야)의 DVD 표지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은 제목이 비슷한 애니메이션 ‘미래를 달리는 소녀’처럼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다른 시간에 사는 남녀가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은 한국 영화 ‘동감’ 등을 연상시킨다. 유사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과 차별성을 지니는 것은 시간을 뛰어넘는 로맨스를 펼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주인공들이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8년 상반기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호평을 얻었으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을 때도 화제를 모았다.

영화 부제가 ‘도쿄소녀(東京少女)’라는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주인공 미호(카호)는 도쿄라는 첨단 도시에 살며 공상과학(SF) 소설가를 지망하는 소녀. 소년 도키지로(사노 가즈마)는 1912년의 도쿄시에 사는데,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인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역시 소설가를 꿈꾸고 있다. 다른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소망을 품은 두 남녀는 휴대전화를 매개로 소통을 하며 1세기의 간격을 뛰어넘는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일본에서 대중 영화가 탄생한 시기인 1912년의 도쿄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일본의 청춘 아이콘인 카호의 풋풋한 매력도 눈길을 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