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개 지역을 기초지자체 자율통합 대상 지역으로 발표했다가 2개 지역을 다시 제외했다. 이러한 해프닝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잘못 접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1994년에 단체장선거를 앞두고 했던 시·군 통합의 재현이 아니라, 지방행정 체제의 재설계다.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세계화 시대의 경쟁을 이끌기에 현재의 광역지방행정 체계가 취약하다. 도쿄, 상하이, 베이징 등은 도시지역 정부의 모습을 지니고 지구도시 계층에서 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도시지역, 예를 들어 수도권과 부산권에는 다수의 지방정부가 경제지형과 정치행정지형의 불일치를 심화시키고 있다. 둘째로, 참여 민주주의의 터전이 되고 편리한 생활구역으로 작동하기에 기초지자체가 지나치게 크거나 혹은 작다. 미국 지방정부의 주민 수는 6600명이고, 일본과 영국은 각각 6만7000명과 12만8000명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평균 주민수가 약 21만명으로 크다. 그럼에도 기초지자체의 행정·재정 능력 강화를 위해, 그리고 주민 생활권과의 불일치를 줄이기 위해 기초지자체의 통합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가에는 거시정치와 미시정치가 존재한다. 거시정치는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정치다. 미시정치란 개별 주체가 자기 이익을 위해 벌이는 정치다. 거시정치는 추상적이다. 반면에 미시정치는 현실적 이해를 두고 벌이기 때문에 종종 거시정치보다도 격렬하다. 일류 선진국이 되자고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자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중앙정부가 해야 할 것은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거시정치다.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미시정치는 그 다음의 이슈여야 한다.

지방행정 체제의 구조 개편에 더해 소프트웨어적 개편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선택헌장 제도를 도입해 주민들에게 지방정부의 권력구조를 선택할 권리를 돌려줘야 한다. 미국에서는 중간 규모 도시의 절반 이상이 도시 최고경영자(CEO)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도시 CEO는 시의회가 임명한다. 서울 자치구의 평균 예산은 2770억원이고, 평균 공무원 수는 1219명이다. 경상남도 기초지자체의 평균 예산은 4060억원이고, 공무원 수는 863명이다. 수천억원 매출의 회사를 경영한 CEO, 수천 명의 부하를 이끈 장군, 그리고 수십 년 공직생활의 노하우를 지닌 엘리트 관료가 이러한 규모의 지방정부를 잘못 운영하리라고 볼 이유가 없다.

둘째, 도시권 지정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큰 이유는 경제생활 권역과 정치행정 권역의 불일치다. 이러한 불일치는 지방행정 구역의 물리적 개편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지만, 도시권 지정을 통한 협력체계 강화를 통해서도 완화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백악관의 관리예산국이 주민 경제생활 통계에 기초해 도시권을 지정하고, 하나의 도시권으로 묶인 지방정부들이 광역계획을 통해 서로 협조하도록 규제한다.

셋째, 지방정부의 정책 관할 영역을 조정하고 책무성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예를 들어 초중고 교육에 대한 기초지자체의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대한민국 젊은 학부모의 80% 이상은 대학을 졸업했고 자녀교육에 대단히 높은 열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유권자를 둔 단체장에게 있어 초중고 교육의 획기적 개선은 당선의 지름길이다. 민사고나 한일고와 같은 고등학교가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마다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국에는 중앙정부 외에도 수십 개의 광역지방정부와 수백 개의 기초지방정부가 있다. 지방정부가 제 몫을 해야 선진국이 된다.

[[최흥석 / 고려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