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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산골 할머니의 주름진 손길이 바빠졌습니다. 일찌감치 말려 놓은 고추도 다듬고, 마당에 널어놓은 참깨도 털어야 합니다. 얼마 전 캐낸 고구마는 먹기 좋은 것만 골라 따로 상자에 담을 참입니다. 며칠 뒤 고향을 찾을 아들, 딸네들에게 줄 것들입니다.

친구 삼아 보는 TV에서는 요즘 경제가 좀 나아졌으나 어렵긴 여전하다고 합니다. 아랫집 할머니는 서울 사는 아들이 농협에서 또 돈을 꾸어달라고 했다며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덩달아 대처에 나간 아이들을 걱정하다 ‘여름 휴가도 못 올 정도로 바쁜 우리 아이들은 괜찮겠지’ 하며 가슴을 쓸어봅니다. 지난 여름엔 휴가 때 간혹 찾아오는 아들, 딸들을 위해 살진 옥수수만 아껴 놨는데도 아이들이 바쁘다며 오지 않았습니다.

우르르 왔다 휙 가 버리면 온통 텅 비는 집, 아예 안 온 것보다 더 쓸쓸해지지만 그래도 이번 추석에는 아이들이 모두 왔으면 좋겠습니다. 늙은 엄마가 해주는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며 형제들과 어울리고, 제 어릴 적 뛰놀던 고향 내음을 맡으면 쉽잖은 객지 생활에 힘이 날 것 아닙니까.

제 아버지를 닮아 속마음이 깊으면서도 어쩐지 뻣뻣한 아들들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 손녀들이 더 그립습니다. 아이들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몇 번이나 일손을 놓고 멀리 문 밖을 내다봅니다. 오래 전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를 대신해 고양이가 지키고 앉은 문턱 너머 마당엔 한가위를 앞둔 가을 오후의 햇살만 고즈넉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정선 = 사진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