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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알려진 수도원은 근접하기 어려운 신비의 영역이다. 세상을 떠난 은둔 수도승들이 기도와 노동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는 침묵·절제·고독의 공간이다. 그랬던 수도원이 세상 속으로 나서고 있다. 2000년 가까이 수도원이 간직해온 유산을 바탕으로‘현대인의 영적 오아시스’를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수도원의 이런 변신은 무엇 때문일까.

이형우(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아빠스)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회장은 성 베네딕도회 한국진출 100주년을 기념,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21세기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회와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아빠스에 따르면 수도원이 세상을 위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수도원을 열린 공동체로 만들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의 삶을 증거하는 것. 그가 시민들을 향해 “와서 함께 기도하고 일하며 마음의 평화를 체험하자”고 청한 이유다.

전국 150여개에 이르는 남녀 수도회들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남녀 수도회는 지난 2007년 수도원 피정집 안내서인 ‘영혼의 쉼터’를 발간한 것에 이어 지난해에는 예비신자 신앙 체험 안내서인 ‘참신앙 살아보기’를 펴냈다.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위해 수도원의 유형·무형적인 자산을 활용하라는 것이다. 특히 일부 수도원은 수도원 자산을 일반인에게 제공하는 것을 넘어 강연, 전시 등의 문화사업과 각종 사회사업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수도원의 이 같은 모습은 동굴이나 사막의 은둔 수도자에서 비롯된 고대 수도원의 전통과는 다소 어긋나는 것이다. “수도자 몇 사람의 기도가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한 독일 베네딕도 수도회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의 말처럼 이들은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방법이 아닌, 기도와 노동으로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함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도원이 변신하는 것은 위기에 처한 수도원의 대안 모색과도 관계가 깊다. 특히 서구를 중심으로 교회가 비어가고 수도승 지원자 또한 급속하게 줄면서 수도원이 존폐의 기로에 처하자 젊은 수도자들을 중심으로 위기감이 커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근(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 수련장) 신부는 “베네딕도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으며 젊은 수도자들이 앞으로 100년 동안 수도원의 방향 설정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했다”며 “문제는 과거처럼 하느님을 찾는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것처럼 막연한 개념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부는 “큰 줄기로는 ‘영적인 오아시스’가 맞지만 세부적으로는 각 수도원이 지닌 전통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며 “왜관수도원이 이미 수도생활 체험학교를 운영하는 것에 더해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으며 전시, 강연,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대대적으로 기획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