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과 포스코가 만났더니 창고가 텅 비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수천억원의 비용절감·수익제고 효과가 발생했고, 유명한 디지털 포스코 혁신 성공 사례가 만들어졌다. 아날로그 포스코 시대에는 제품을 만들어 재고로 창고에 보관하다가 살 사람이 나타나면 팔고, 안 팔리면 비용 덩어리가 되는 이른바 ‘재고판매방식(BTS)’이었다.

그러나 IT로 디지털 포스코가 되면서 ‘주문생산(BTO)’이 가능해져 재고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됐다. IT로 인해 고객의 주문이 먼저 이뤄지고 생산이 뒤따르는 수요자 중심으로 생산 방식의 혁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자동차에 IT를 입히면 디지털자동차가 만들어지고 자동차 간 대화가 가능해지며 추돌사고를 막을 수 있다. IT가 기계와 기계 간 대화를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IT는 자동차의 안전성뿐만 아니라 편의성을 향상시키고 에너지 효율도 제고해 환경 문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나아가 자동차산업이 내연기술에서 전기기술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 될 수 있다. IT와 가전 기기가 결합되면 인간과의 소통이 가능해지고 홈 네트워크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IT와 TV가 만나 인터넷(IP) TV가 만들어진다. 이처럼 전통산업이 IT와 ‘융합’하면 신(新)성장동력산업으로 진화한다. IT가 엄청난 외부성 효과를 만들어내는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는 2일 ‘IT 코리아 미래전략’ 보고대회를 통해 IT를 축으로 새로운 국가 성장의 동력을 키워가겠다는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실 지난 정보통신부 시절에는 IT가 타산업과 융합되기보다는 정보통신산업이라는 ‘나홀로’산업으로 존재하면서 기존 산업과의 통합에 장애요인이 있었다. 이제 나홀로가 아니라 자동차·조선·의료·항공·에너지 등에 IT를 융합해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IT 융합 전략이야말로 중국의 거대한 저가 공세를 막아내고 융합의 고도화를 실현해 고부가가치로 한국의 산업경쟁력을 한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 모든 산업이 이미 디지털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속도의 게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삼성전자의 디지털화는 소니보다 더 빠른 속도의 디지털화로 아날로그의 절대강자 소니를 앞지를 수 있었다. 현대·기아차도 디지털화를 통한 차별화, 프리미엄화를 시도하고 브랜드파워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삼성의 디지털화로 싸구려 삼성이 고가전략에 성공한 것처럼, 현대·기아차의 디지털화 전략도 해외 시장에서 고가 브랜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처럼 IT는 제조업 융합을 통한 진화의 기본이 된다. 문제는 주력 IT 기기 개발과 융합의 속도다. 쌀이 맛있어야 밥이 맛있듯이 주력 IT 기기의 질이 좋아야 융합 제품도 성공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IT 기기가 기존 이상의 가치 및 문제 해결책 제공의 촉진자(enabler)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산업이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서서 복잡한 전자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시스템 반도체 개발이 전제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IT 제조강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IT 개발강국으로 발전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 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IT 공급분야와 수요분야 간 상호 협력이 강화돼야 한다. 자동차와 전자가 만나서 시스템 반도체가 개발되고 있고, 현대모비스와 삼성LED가 만나 친환경 자동차 부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등이 좋은 예다. IT를 중심으로 한 ‘통섭·융합·협력·네트워크’ 전략이 머잖아 한국의 굴뚝산업을 진화시키는 또 다른 IT 신화를 기대해 본다.

[[김기찬 / 가톨릭대 기획처장·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