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 상당수의 가문이 몰락하고 있다. 그 자녀들은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생활고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인정받기도 하지만 정부 보상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전남 보성 출신 구한말 의병장 임창모(1868~1909) 선생 가문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임 선생은 사재를 털어 의병을 규합,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동생 임연모씨와 아들 임학규씨도 전사했는데 임학규씨에게는 유복자 임칠성씨가 있었다.

임칠성씨는 일제때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광복 직전 9명의 자녀를 데리고 귀국했으나 1948년 여순사건때 희생된 민간인들과 함께 시체로 발견됐다. 이후 임칠성씨의 자녀들은 고아원에 맡겨지는 등 뿔뿔이 흩어졌고 3남인 임관회(74·광주광역시)씨 외에는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임관회씨의 증조부인 임창모 선생에게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조부인 임학규씨에게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임관회씨는 청각장애인으로 어려운 삶을 살아왔으며 자녀 3명을 두었으나 100여만원의 독립유공자 보상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1919년 독립만세 시위에 참가했다가 2년을 복역한 최치환(1897~1966)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최기춘(73·전북 익산시) 할머니는 홀몸으로 돌봐줄 가족도 후손도 없다. 척추 디스크로 고생하다 지난 8일 수술을 했지만 병실을 찾는 이는 교회 사람들 몇 명뿐이다. 2008년 최치환 선생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은 뒤 독립유공자 연금(월 100만원)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1919년 4월1일 충남 천안군 갈전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순국한 박병호(1875~1919) 선생의 유일한 혈육인 손자 박종선(74·충북 청주시)씨 가족은 전세 2000만원의 43㎡(13평)짜리 아파트에서 독립유공자 보상금(123만3000원)으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 가고 있다.

광주 = 정우천기자 goodp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