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임정현기자

[인터뷰=허민 사회부장]

“출산 장려를 위해서라면 정부는 ‘적자재정’도 감수해야 합니다. 국가재정이 어렵다 해도 국채를 내서라도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장래에 이익이 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일보가 추진하는 저출산 극복을 위한 범국민운동, ‘아이사랑 - More Babies’의 공동주최측인 보건복지가족부의 전재희 장관은 1일 서울 종로구 계동 장관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의 책임론’을 소리 높여 강조했다.


“제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우리 자녀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한 뒤 나가서 살라고 하면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을까요. 집에서 부모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니까 결혼이 늦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출산 문제와 관련한 주무 부처 장관의 고민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전 장관은 “우리 집만 해도 아들 딸이 서른 둘, 서른 셋이 됐는데도 시집 장가 안가고 집에 있다”고 고백한 뒤 “만약 부모님이 전혀 돌봐주지 않으면 결혼도 자연스럽게 일찍 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전 장관의 머릿 속은 저출산 문제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명절에 수십명씩 모이는 대가족 얘기는 과거에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오는 일이 되어버렸다”며 전 장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 장관은 세계 제2의 경제체인 일본의 예를 꺼내 들었다. “우리는 절대 일본이 망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일본이라도 인구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면…. 이 같은 위기의식 때문인지 최근 일본의 출산율이 우리보다 많이 올라갔습니다. 한국이 1.19인데, 일본은 약 1.3가량 되더군요. 3년 이상 증가세라고 들었습니다.” 전 장관의 말엔 부러움이 배어 있었다.

전 장관은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참석차 스위스 제네바와 프랑스 등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프랑스는 저출산 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낳기만 하면 국가가 길러준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수십년 운동을 벌인 끝에 마(魔)의 2.0을 극복하고 ‘유럽 최저 출산율’을 탈출한 프랑스가 참 보기 좋았습니다.”

전 장관은 프랑스 파리의 국립가족수당기금(CNAF)을 방문했을 때의 얘기도 화제에 올렸다. “기금 관계자들에 따르면 프랑스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면서 노령화사회 도래에 따른 예산 지출과 사회적 비용을 대폭 줄였다고 합니다. 저출산 대책은 결국 미래에 되돌려받을 투자인 셈이죠. 그때 ‘아, 국채를 내서라도 출산장려운동을 벌여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전 장관은 출산장려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려면 강력한 정책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정책적 인프라’를 만드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한국은 반대였죠. 무조건 ‘아이만 많이 낳아라’고 해놓고 정책과 관련해서는 ‘아직 여력이 안되니까 나중에 어떻게 해보자’ 이런 식 아니었습니까.”

자연스럽게 정책문제로 화제가 옮아갔다. “엄마들이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데 부담이 없도록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육이나 ‘방과후 돌봄’ 같은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겠죠. 또 출산율 제고의 타깃을 전체 가임여성으로 확대하고 저소득층은 물론 아기를 낳아 키우기 좋은 여건에 있는 중산층도 적극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저소득층 위주로 정책을 펴고 중산층은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전 장관은 기업 내 분위기와 문화도 확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출산여성에게 휴가와 월급을 제대로 주고 양육과 교육에 지출하는 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것들이 해결돼야 합니다. 복지부에서 지정한 ‘가족친화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자녀 수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복지부는 가족친화기업이나 출산·육아여성을 적극 지원하는 지자체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출산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입니다.”

출산율 높이기와 관련해 전 장관은 ‘체감 정책’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출산·육아여성이 받게될 경제적 혜택과 관련한 ‘손에 잡히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 한 출산장려운동이 범국민운동으로 승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전 장관의 결론 중 하나는 출산 장려를 위해 정부가 ‘적자재정’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재정이 어렵지만 국채를 내서라도, 또 빚을 져서라도 출산을 장려하는 것이 장래에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다.

“설령 빚을 내더라도 미래로 보면 국가적으로는 이득이 됩니다. 국채 원리금 갚는 부담과 장래에 사회적 비용을 덜 쓰는 거 비교하면 어느 게 나을까요.” 전 장관은 “나라 빚을 내서라도 출산율을 높인 이후의 경쟁력과 현재 수준의 출산율을 유지했을 때의 경쟁력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한국개발연구원(KDI) 같은 데서 이런 연구를 좀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위해 집에서 빚을 내서 공부시키지 않습니까. 기업이 어려우면 국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지 않습니까. 출산율이 떨어지면 군대에는 누가 갑니까.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모두 안됩니다. 국민 세금은 ‘선택과 집중’이 중요합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과 연구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국가기관이 나서야 합니다.” 전 장관은 단문형으로, 논리적이면서도 힘있게 자신의 주장을 펴나갔다.

전 장관은 문화일보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설득해서 ‘아이사랑’ 운동에 동참하도록 해줄 것을 ‘당부’했다. 국가예산과 재정을 담당하는 주관 부처의 장이 나서야 출산장려운동이 빛을 보게 된다는 논리다. “재정부 장관이 나서준다면 ‘아이사랑’ 운동에 얼마나 힘이 실리겠습니까. 재정부가 모든 미래 성장의 우선순위를 출산에 두겠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전 장관은 “재정 운용권이 없는 부처만 하면 부족하다”면서 “정책 당국자나 재정을 운용하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며 팔을 걷어붙이고 동참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전 장관이 저출산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16대 국회에 입문하면서 환경노동위원회와 여성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지난 2000년부터였다. “그땐 정부가 저출산에 대한 심각성을 느끼기 전이었습니다. 국민연금을 추계하면서 정부의 인식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식으로는 머지않은 장래에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도 부담이 너무 커서 운영할 수가 없게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전 장관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정부가 출산율을 억제하기 위해 구호를 만들어 보급했던 일을 회상했다. “별의별 구호가 판을 쳤습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부터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 못면한다’,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 같은 것도 있었죠. 우리 정부가 방향을 틀기까지는 공백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전 장관은 정부가 출산장려운동을 국가적 사업으로 한다는 각오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분명한 캐치프레이즈를 하루 빨리 만들어 보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전 장관의 지론 가운데 하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출산문제도 같은 원리라고 그는 강조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일이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희망적인 것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희망 자녀수가 2.3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전 장관은 “프랑스는 유럽 최저 출산 국가에서 출산율 마의 2.0을 돌파하는 데 무려 39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희망 자녀 수로 보더라도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실제 자녀의 수가 희망 자녀 수의 절반밖에 안된다는 것은 그만큼 희망이 있다는 얘기라는 뜻이다.

전 장관은 복지부가 문화일보와 ‘아이사랑-More Babies’ 운동을 공동주최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문화일보는 일사일촌운동 등 우수 캠페인의 성공 사례가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답했다. “문화일보가 출산율 높이기 운동을 지속적으로, 성공할 때까지 책임을 지고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출산율이 2.0을 넘어설 때까지 사운을 걸고 ‘아이사랑’ 운동을 계속해 주길 바랍니다. 정부도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전 장관은 “올 인(All in)하는 사람과 집단이 있을 때 세상은 변하는 법”이라면서 “올바른 목표를 세우고 나면 남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어떻게 생각하든 끝까지 추진해 반드시 성공하고야 만다는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활짝 웃어보였다.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