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찰청장이 취임하고 40여일이 흘렀다. 법질서를 바로세우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다짐 속에 출발한 ‘강희락 경찰’이었으나 지금의 모습은 영 딴판이다. 정복을 입은 경사가 성인오락실에 들어가 환전상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현금이 든 손가방을 강탈해 가는가 하면, 요금 시비 끝에 현직 경찰이 택시 운전기사를 때려서 숨지게 하고, 유치장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수감돼 있던 젊은 피의자 두 사람이 탈주하는 일도 벌어졌다.

범인을 체포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범죄행각을 벌이고, 잡은 범인이 도망하게 방치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국민이 경찰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경찰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지 않으냐는 말도 가능하겠지만, 경찰은 보통의 직장과는 다른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곧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바로서야 우리 사회의 법질서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고 그래야 법이 준수된다.

법질서를 바로세우는 것은 용산참사를 극복하고 새롭게 일어서야 하는 경찰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본래 경찰이 수행해야 할 지극히 기초적인 임무이기 때문에 더할 나위없이 시급한 일이다. 그런데 경찰 어딘가에는 나사가 빠진 듯한 현상이 자꾸 발생한다.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기강은 왜 해이해지는가. 투철한 직업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의 경찰은 일반인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잘못해서 경찰서에 끌려가 두들겨맞고 나와서도 어디 하소연 할 데가 없던 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의 과거였다. 오죽하면 경찰의 고문에 죽는 사람도 있었겠는가. 경찰을 보고 사람들이 설설 기니 경찰 할 맛이 났을 것이다. 그러나 속도 빠른 민주화의 바람은 이러한 현상을 이제 씻은 듯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제는 잘 못했다가는 오히려 경찰이 행인들에게 뭇매를 맞을 수 있는 시대다. 경찰이 국민의 기본권을 밥 먹듯 침해하는 나라도 문제지만 법질서를 지켜야 할 경찰이 국민의 조롱거리가 되는 나라도 역시 문제다. 권력기관의 종사자로서 강압적 위엄을 유지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고 대신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우뚝 설 시대가 됐으나 그 변화에 경찰이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게 아니겠는가.

일단 경찰청장 스스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는 자평을 할 정도이고, 일선 경찰관들로부터 ‘정풍’요구가 거세지고 있다니 문제 인식은 확실해 보인다. 다른 무엇보다도 아래로부터의 정풍운동은 경찰을 변하게 할 수 있는 신선한 바람이다. 타성에 젖은 수뇌부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각종 제언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다.

예를 들면 ‘중간 간부들의 자기중심적 판단에 의한 특진과 심사’ ‘승진인사에 엎드려 조아리는 잔칫상’ ‘자체 비리에 대한 강도 높은 척결 의지’ 등의 주장이다. 내부에서 이미 해답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정풍 의견의 핵심은 법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곧 법질서를 세우는 일 아니겠는가. 법질서 유지가 경찰의 기본임무라면 그 조직 역시 법대로 움직여야 한다. 조금은 경직되더라도 곧이곧대로 법에 따라 움직인다면 국민의 신뢰도 살아난다.

또 법대로 하다 보면 부당한 정치적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권력의 시녀가 아닌 국민의 수호천사로 평가받고 강력한 경찰로 거듭나게 된다.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경찰이 약할 수는 없다. 법대로 하면 경찰 내부의 불만도 사라지니 조직의 결속력이 강화되는 건 당연하다. 공정한 절차가 곧 법이고 그것은 곧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풍운동을 계기로 경찰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김성천 / 중앙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