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신창섭기자

“지론(持論)이오? 지론이 아니라 지병(持病)입니다.”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반대를 언급해 충청권이 또 벌집 쑤신 듯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인터뷰에 배석했던 허숭 대변인이 언급 자제를 건의했지만 그는 무시했다. 김문수(사진) 경기지사는 23일 4월회 주최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대한민국의 미래, 경기도’란 주제의 특강에서 세종시 반대입장을 또 다시 밝혔다. 충청권이 가만 있을 리 없다. 24일 이완구 충남지사가 발끈하더니 25일에는 이 지사, 박성효 대전시장, 정우택 충북지사가 공동으로 긴급 3자 회동을 갖고 김 지사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한 뒤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의 지론은 자신의 말대로 ‘지병’이었다.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경기도 서울사무소에서 1년 만에 다시 만난 김 지사는 이처럼 변함이 없었다. 여전히 경기도 현안과 관련해서는 중앙정부를 향해 날선 비판을 했고, 소신에는 굽힘이 없었다.


[인터뷰=최영범 전국부장]

―세종시를 왜 그토록 반대합니까.

“현재 정부 1청사가 서울 세종로에 있고, 2청사가 과천에 있고, 3청사가 대전에 있는데 4청사를 지어서 청사가 나뉘어 있으면 비효율성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한가족이 네 살림을 한다는 것하고 같죠.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불행도시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줄여 행복도시로 불렀지만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역시 줄임말로 행정중복도시라고 불렀다.) 단순히 비용문제가 아니라 지리적으로 비효율과 낭비가 지속적으로 일어납니다. 과천청사도 세종로 청사에 합치고 국회도 세종로 쪽으로 오는 게 좋죠. 그래서 대통령과 국회, 각 부처가 가장 단거리에 집중돼 있는 것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선거논리, 정치논리, 득표수단으로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이지만 심각한 국가적 비효율을 가져 옵니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공무원들만 결국 희생양이 됩니다. 전세계에 이렇게 나눠 놓은 데가 없어요.” 또박또박하고 느린 어투였지만 거침이 없었다.

―그럼 현재 건설 중인 세종시는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지금 전국 1등이 울산시입니다. 행정부처를 옮겨서 1등이 아닙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의 좋은 기업 때문에 1등입니다. 구미, 포항, 창원, 광양, 거제도 잘 나갑니다. 지방을 발전시키려면 산업을 배치해야지 관공서를 배치해서는 안됩니다. 산업을 유치하려면 획기적인 인센티브를 줘야 됩니다. ‘세종시 땅을 공짜로 주겠다’,‘좋은 학교를 짓고 보조금도 주겠다’ 이러면 세계의 100대 기업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안 올 이유 있습니까. 획기적인 지역발전 대책을 취해야지 관공서 갖다 놔 봐야 점심도 한그릇 잘 안 팔립니다. 대전에 3청사를 갖다 놨다고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국가가 지금이라도 결단을 내려서 정말로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취해야 합니다. 청사를 옮긴다면 통일시대에 대비해서 북쪽으로 진출해야지요. ”

김 지사는 자신의 표현대로 ‘경기도 역차별론’을 거론하며 ‘악악거려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물론 중앙정부에 대해 위험수위를 오르내릴 정도로 직설적이며 공격적이었다. 이런 ‘악악거림’ 때문인지 지난해 정부는 수도권 규제개혁안을 발표했다.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상당한 진전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은 폐지돼야 합니다. 공공기관을 이전하기로 하면서 동시에 수정법 폐지를 약속했었는데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규제개혁 부문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빨라지기 시작했다. “경제가 매우 어려워지는데 이천시 하이닉스 반도체의 경우 음용수의 125분의 1밖에 안되는 구리배출 문제 때문에 환경부가 공장 증설을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광명시의 기아자동차도 멀쩡한 공장부지에 그린벨트를 덮어 씌워 놓고 풀어주질 않습니다. 그린벨트 규제나 군사시설보호구역 규제, 농지 규제, 물(상수원) 규제도 획기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푼 것은 첫 걸음, 시작일뿐입니다.” 김 지사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수도권 규제 개혁은 이 대통령께서 해주셔서 상당한 진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경쟁 상대국인 중국, 싱가포르, 일본에 비해서 규제가 매우 강합니다. 해외 기업의 유치를 위해서 뛰어보면 우리가 밀립니다. 여전히 과도한 규제입니다. 이제는 정치논리가 아닌 경제논리, 정치논리라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해야지 균형발전이라는 사회주의식 논리는 안됩니다.” 규제개혁 신봉론자다웠다. 여전히 ‘악악거리는’ 김 지사가 여당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대통령과 정부를 몰아붙이는 데 켕기는 점은 없을까. 그래서 슬쩍 건너 짚어봤다.

―이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 보다 지방 목소리를 가장 잘 안다는 평가도 있던데.

“아, 물론입니다. 실제로 지방 배려 마인드가 최고 수준입니다. 역시 자치단체장 출신답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통령께서 모든 걸 다 할 수 없습니다. 중앙부처 공무원이란 사람들은 특히 기획재정부 이런 사람들은 지방을 몰라요. 책상에만 앉아 있어요. 행정만 알지 말고 지방을 알고 복지도 알아야 되는데 제일 모르는 사람들이 기획재정부입니다.”

대통령과 정부 부처를 분명히 구분했다. 김 지사의 주 타깃은 기획재정부였다.

“정부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하는데, 지금이 진짜 비상상황인데, 규제개혁 필요성에 대한 체감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좀 더 현장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중앙부처가 답답한 게 없어서 그런지 들어주질 않습니다. 우리만 답답할 뿐이지.” 김 지사는 한걸음 더 나갔다. 전북 새만금 사업,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까지 거론하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없이 쏟아냈다. 김 지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지방 소비세, 지방 소득세 도입은 어떻게 됐을까.

“행정안전부는 찬성인데 기획재정부는 도입 불가입니다. 고래 심줄입니다.” 윤증현 장관은 왜 반대할까. 그의 답변이다. “국세 80%, 지방세 20%이지만, 지방이 60% 쓰고 국가가 40%밖에 안 쓴다는 거예요. 국가가 다 주는데 뭐 때문에 별도 세원을 마련하느냐는 거지요. 재정 자치없는 지방자치 없습니다. 지방별로 부익부 빈익빈 불균형이 일어나면 그 다음 교부세, 보조금 등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물건너간 겁니까.

“16개 시도지사가 공동 결의문을 작성해 이 대통령께 전달했습니다. 작년 12월 달에 약속했거든요. 약속한 걸 지키라고. 대통령한테 다시 공이 넘어갔죠. 어떻게 결판내려 주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기획재정부가 워낙 우수하고 고래 심줄이기 때문에 웬만한 대통령도 이길 수 없다는 겁니다.”

― 그래도 경기도는 예산문제에 관한 한 비교적 나은 편 아닙니까.

“세금이 안 들어옵니다. 재정이 완전히 지금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지출은 많은데 세수가 없으니까 심각한 상태죠. 기업이 잘 안돼 가동률이 떨어지고 부도가 나고 뭐 법정관리 신청했다든지 감원하는 기업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투자도 안됩니다. 시기가 안 좋으니까. 부동산도 심각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어요. 미분양 아파트가 전국에 제일 많습니다. 동탄, 광교, 고덕 같은 곳에 토지 보상비를 집행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집행을 못하고 있어요. 민원이 엄청 발생하고 있습니다.”

경기불황에 어려움을 겪는 시도가 어디 경기도 뿐이랴. 하지만 김 지사는 경기도가 16개 시도 중 재정 조기집행률이 16위로 꼴등이라고 했다. 다른 지자체가 받는 국고 보조도 없다고 앓는 소리다. 경기도는 부동산 거래세의 비율이 거의 50%에 육박하는데 경기침체로 부동산 경기가 죽으니 거래가 안돼 세입이 형편없다는 것이다. 내친 김에 김 지사가 불만을 품을 만한 잡 셰어링인 행정인턴제에 대해 물었다.

“(잡 셰어링은) 일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전혀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은 정도가 아니라는 거죠. 그야말로 비상시 임시변통이죠. 공무원 정원동결 방침이란 게 있습니다. 이건 잘못됐습니다. 꼭 필요한 부문의 자리는 정규직으로 채용해줘야 됩니다. 일정한 공공 분야, 공직 분야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은 큰 정부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정원 동결 방침을 고수하기보다는 약간 탄력적으로 늘려야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민간이 규제만 풀면 투자를 하겠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민간이 우선입니다. 공공부문에서 늘리는 게 두 번째입니다. 행정 인턴은 하지하책입니다. 상지상책은 기업이 이러한 때에 연구개발(R&D)을 한다든지 첨단기술에 관련된 증액 투자를 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

대충 됐다 싶어 인터뷰를 끝내고 일어서려하자 김 지사가 “한마디 더 하겠다”며 기자를 다시 앉혔다. “하나만 말씀을 더 드리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약한 편입니다. 이 상태에서 개헌론이나 지방 행정 체제개편, ‘그냥 단순한 개량이 대개혁이라는’ 난제 중에 난제를 들고 나오시질 않기를 바랍니다. 경제회복과 국론통합에 도움이 안 되고 성과도 매우 불투명한 문제를 들고 나오시는 것은 적합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화두가 당황스러웠다.

―어디서 무슨 말씀을 들으신 모양이죠.

“아니, 요즘 언론 보면 자꾸 바람을 넣더라고요. 국회에서 도를 폐지한다는 둥, 행정구역을 개편해서 내년 선거에 임한다는 둥. 해봐요, 쉬운가. 절대로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명명백백한 법도 통과 못시키고 쩔쩔매면서 안 되는 것 갖고 너무 떠들 것 없습니다.” 김 지사의 인터뷰 에필로그는 국회를 향해 날린 쓴소리였다.

youngb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