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게티볼(spaghetti bowl) 효과’는 자그디시 바그와티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자유무역협정(FTA)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 표현이다. 너무 많은 나라 사이에 동시다발로 FTA가 체결되면 마치 스파게티 그릇 안의 국수가닥처럼 서로 다른 규정·표준·절차 등이 뒤얽혀 거래 비용이 더 들 수 있다는 것이다. 바그와티는 대표적 자유무역론자이지만 다자간 체제를 우선하는 시각에서 FTA 경계론을 폈다.

그러나 요즘 국제통상의 흐름은 이런 우려를 뒤집고 있다. 다자간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데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로 보호무역주의까지 고개를 들면서 FTA가 자유무역 메신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는 것이다. FTA는 체결 당사국 간에는 무역 걸림돌을 치우지만, 역외국엔 상대적으로 더 높은 벽을 쌓는 양면성을 가진다. 그래서 유력 시장들을 선점해 FTA 네트워크화하는 것이 지금 여건에서는 최선의 선택이다. 무역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80%에 육박하는 한국으로선 더 절실하다. 세계 최대시장 유럽연합(EU)과의 FTA 협상도 성사 직전이다.

문제는 FTA, 그중 특히 한·미 FTA를 둘러싼 논의 자체가 스파게티볼과 흡사하다는 점이다. 2007년 4월2일 타결하고 그해 6월30일 서명한 협정문이 ‘비준 족쇄’에 갇히면서 안팎으로 상황도 논변도 얽히고설켜버린 것이다.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지난주 사흘 사이에 한·미 FTA를 “현 상태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가 “전반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자 국내 반응이 냉·온탕을 오간 것은 비근한 예다. 같은 입장의 다른 표현일 뿐인데도 정파별로 유·불리를 달리 재고, 지레 재협상을 하느냐 마느냐로 다투는 건 민망한 일이다.

난마(亂麻)처럼 얽힌 사안은 단순화하면 실마리가 풀린다. 때론 상대의 입장에 서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첫째, 한·미 FTA는 미국으로서도 무산되기를 결코 원치 않는 프로젝트다. ‘지난 16년 동안 미국이 체결한 FTA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FTA’-다름 아닌 USTR 평가다. 동북아 지역의 정치·경제적 전략 요충지로서의 한국의 특수성도 간과하지 못한다.

둘째, 타결된 협정문은 수많은 업종과 단체의 이해가 녹아 있다. 개별 부문의 득실 차는 있어도 종합적으로는 절묘한 균형을 취한 것이고, 그것이 곧 협상이다. 유독 자동차만 뒤늦게 문제 삼는 건 대국적인 자세가 아닌데다 타 부문의 반발을 부를 수 있다. 자동차 교역 불균등론부터가 허점이 많다.

셋째, 협정문을 비준도 하기 전에 고치는 건 악선례로 미국 역시 부담이다. 타결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 달라진 중대 상황이 있다면 또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국제 규범에도 어긋난다. 미 통상 당국자들은 아직 공식적으로 ‘재협상(renegotiation)’이란 단어를 쓰지 않고 있다.

이렇게 정리한다면 우리의 대응전략 역시 간명해진다. 독자적인 스케줄을 갖고 비준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다. 먼저 비준했다가 재협상으로 수정하면 나라의 체신이 깎인다는 주장은 하수(下手)의 발상이다. 재협상을 상정하고 눈치보는 것이 바로 사대주의이고, 그럴수록 상대가 다양한 패를 고를 수 있도록 운신의 폭만 넓혀주게 된다. 선 비준은 우리의 패를 먼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만에 하나 재협상 국면이 오더라도 입지를 강화해주는 새로운 카드를 쥐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주 한·미 FTA 등을 거론하며 오바마 행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취할 것을 촉구했다. ‘공정무역’의 기치 아래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의 경계를 오가는 모호한 통상정책에 대한 비판임은 물론이다. FTA를 두고 혼선을 겪는 건 미국도 비슷해 보인다.

현 단계에서 가장 냉철한 접근법을 제시한 사람은 의외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다. 그는 16일 “상황을 정치화하려는 유혹은 뿌리쳐야 한다”면서 인내심과 실용적 자세를 주문했다. 지금 필요한 건 정략이 아니라 전략이고, 미 측의 동향에 일희일비 않는 평정심이다.

[[김회평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