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대근 전 농협회장에게 로비자금으로 250만달러를 건넨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지면서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연차 비자금’ 용처 첫 확인 = 박 회장이 해외에서 조성한 비자금이 태광실업의 휴켐스 인수 로비자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은 향후 검찰 수사의 칼끝이 박 회장으로부터 로비를 받은 정·관계 인사로 향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동안 법조계와 정치권 안팎에서 박 회장을 비호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인사들이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단행된 검찰 간부인사에서 박 회장과 친분이 있거나 접촉한 정황이 있는 검사장급 간부 2~3명이 주요 보직에서 배제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검찰 안팎에선 박 회장이 조성한 비자금 사용처에 대한 수사 결과에 따라 현 정권 및 노무현 정부 실세 등 박 회장의 로비를 받은 사람의 이름이 드러날 경우 ‘박연차 리스트’가 현 정국을 흔들어 놓을 뇌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이 한나라당 재정위원을 지냈고 경남과 부산지역 정치인과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검찰 수사 상황에 따라 현 정권 인사들도 검찰의 칼끝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박연차 리스트’수사 본격화 = 검찰은 지난해 12월 박 회장에 대한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회장에 대한 정·관계 로비 및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등에 대해 관련자 조사와 자금추적, 회계분석 등을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박용석 대검 중수부장은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발견되면 관련자의 신분이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검찰이 로비 수사의 단서로 삼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에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L, S, K, C 의원 등과 함께 K 의원, S 전 의원 등 부산지역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망라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줄곧 “리스트는 없다”며 로비 의혹 확산을 차단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로비 의혹 대상이 여야를 망라하고 폭넓게 제기되고 있는 만큼 쉽사리 뛰어들었다가는 예상치 못한 후폭풍을 맞을 수 있고 결과가 빈약했을 경우 무리한 검찰권 행사라는 사회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 있게 제시됐다. 그동안 ‘김상진 리스트’와 ‘제이유 리스트’ 등 로비 의혹과 관련된 리스트 수사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전례가 있어 수사력 분산을 우려한 검찰이 몸을 사렸다는 관측도 나왔다.

검찰이 박 회장의 비자금 사용처 규명에 본격적으로 나선 만큼 ‘박연차 리스트’의 실체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김백기기자 bki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