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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에 3300번이나 날개를 퍼덕이는 벌새. 이 놀라운 생명체는 수분 동안만 날지 않아도 심장이 멈춰 숨을 거둔다. 날갯짓 모양을 느린 화면으로 돌려보면 나타나는 형상이 ‘∞’(무한대)다. 영화속의 이 작은 메타포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하려는 이야기의 훌륭한 출발점이 된다.

마크 트웨인의 “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는 되뇜에 영감을 받아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가 1920년대에 쓴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1918년 뉴올리언스에서 80세의 외모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 벤자민 버튼(브래드 피트)은 거꾸로 신체적 나이를 먹는 ‘무덤에서 요람’으로 갈 운명을 갖고 태어난 기이한 존재다.

평생 발버둥치면서도 삶이 영원하리라 여기고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일진대,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존재에겐 말 그대로 무한대의 삶이 열릴 것 같음은 물론이다. 기이한 착상에서 시작된 이 영화는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만남과 헤어짐, 기쁨과 슬픔 속에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차분하게 설파한다.

괴물의 모습으로 태어나 친부로부터 버림받고 양로원에서 자라던 12세짜리 ‘쭈글탱이’ 영감 벤자민은 어느날 파란 눈동자의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를 만나 사랑을 키워간다. “갈수록 젊어진다”는 유쾌한 발상에도 영화 스토리는 앞으로 다가올 벤자민의 운명을 아는 관객들에게 즐겁지만은 않다. 자연의 법칙을 깨고 시간을 거슬러가는 벤자민은 일생을 통해 피천득의 수필 ‘인연’처럼 시간의 간격을 두고 데이지와 조우하지만, 데이지는 시들어가는 ‘백합’ 신세다. 그들에게 있어 시간의 교집합은 40대 초반의 단 한 순간뿐이며, 운명은 야속하게도서로를 지나 엇갈려 흐른다.

보통 영화보다 1시간 정도 긴 166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나이든 관객은 젊어지고 싶은 욕망의 대리만족, 어린 관객은 나이먹음에 대한 호기심에서 다음 장면이 기대되는 것이다. 매력적인 20대 청년에서부터 80세 벤자민 역까지 피트가 보여준 연기는 맛깔스럽다. 여성 관객들은 팽팽한 피부의 ‘꽃남’ 피트를 만나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누군가는 음악에 조예가 깊고, 누군가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셰익스피어를 읽고, 누군가는 예술가인 영화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진지하면서도 흥미롭게 연출됐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은 아들들을 되살려내기 위해 시각장애인 장인이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드는 국가주의, “인간은 현실세계에 미친 개처럼 살 수 있지만, 죽음을 앞둔 순간엔 신을 찾게 된다”는 다분히 종교적 메시지까지 관객들이 곱씹어볼 만한 장면들도 적지 않다. 오는 22일 열리는 제81회 아카데미상에 가장 많은 13개 부문에서 후보로 이름을 올린 수작이다. 12일 개봉.

박수균기자 freewi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