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소재, 감각적이고 빠른 전개로 소설 읽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미국의 팝 아트 전위 소설가 죠 메노의 단편집 ‘유령 비행기’(늘봄)가 출간됐다. 현대인의 흔들리는 일상, 그 속에서 부딪히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를 감각적이면서 가볍게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 때문에 한편 한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죠 메노의 이같은 현대적 감각은 단편집을 단순히 읽는 책이 아니라 보는 책으로 만든 그의 기획으로 더 빛이 난다. 소설집에는 총 20편의 단편이 실렸는데, 이 안에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화가 20여명이 작품을 읽고 얻은 영감을 풀어낸 일러스트 작품이 함께 수록돼 있기 때문이다. 소설 사이 사이에 실린 현대 화가, 그래픽 아티스트, 만화 아티스트의 일러스트들은 때로는 소설을 설명해주고, 때로는 소설을 이미지로 나타내면서 색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시카고 컬럼비아 칼리지의 문예 창작과 교수인 죠 메노는 한국어판 출간 서문에서 이번 소설집을 ‘한 통의 폭죽’이라고 표현했다. “중국의 폭죽은 원래 재앙을 불러온다는 귀신들을 놀라게 하여 ？杵틜嗤？졍？목적으로 발명됐다”는 작가는 “이 단편집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진행되고 있는 일상적 비극부터 전쟁, 홍수 같은 재앙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로 기획됐다”고 밝힌다.

그런데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작가는 소설을 통해 역으로 그런 재앙 속으로 과감하게 걸어들어간다. 회사, 공항, 학교, 동물원, 응급실에 이르기까지 현대인들에게 친숙한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상황들을 보여준다. 다만 이같은 인간사의 다양한 비극, 참사와 재앙을 다루면서도, 마치 현실이 아닌 듯 경쾌하게 전개시키고 대부분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몰고 간다.

예를 들어 ‘1973년 스톡홀름’은 은행강도 인질극과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인질범 이야기이다. 어리숙한 아마추어 은행털이범 얀은 스톡홀름 중심가의 한 은행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그의 은행강도 행각은 처음부터 휘청거린다. 은행으로 들어가는 회전문 안에서 권총을 꺼내 머리 위로 올리고 ‘은행강도다’라고 소리쳐버린 것. 코미디처럼 회전문에 갇힌 채 정체를 다 드러냈고, ‘은행강도다’라는 그의 외침은 두꺼운 유리에 막혀 잘 들리지도 않는다.

당황한 강도는 얼떨결에 경찰을 향해 총을 쏘고, 사람들을 인질로 잡은 채 대형사고로 달려가게 된다. 은행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인질극인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부조리한 유머와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툭툭 던지며 달려간다. 얀은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친구 클라크를 불러들이고, 인질로 잡힌 미모의 은행 여직원 4명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테러, 전쟁, 강도 같은 두려움이 일상화된 현대사회를 비틀고, 그 재앙같은 삶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드러낸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